10년 전 독일 출장에서 생긴 일이다. 아우토반에 올라선 차는 질주했다. 넓은 실내와 클래식한 장식이 돋보였던 폭스바겐 자동차 속도는 충격이었다. 모든 차가 시속 180∼200㎞를 넘나들었다. 그럼에도 안정적인 승차감은 깊은 인상을 줬다. 체감속도는 80∼100㎞ 전후에 불과했던 기억이다. 주행속도가 빨라도 비행기 안처럼 승차감은 최고였다. 비싼 가격에도 상당수 한국인이 독일차를 선호하는 이유다. 자동차는 쌍둥이칼과 함께 독일의 자랑이자 상징이다. 게르만 민족의 묵직한 느낌과도 잘 조화를 이룬다.
독일은 어떻게 자동차 강국이 됐을까. 세계 최고 철강 경쟁력에다 원칙을 지키는 장인정신의 산물이다. 튼튼하고 안전하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여기에는 ‘정직함’이라는 비결이 숨어 있다. 세계 운전자는 정직함의 가치를 인정한다. 동종업계 대비 갑절 이상 비싸도 기꺼이 지갑을 열었던 이유다. 벤츠, 폭스바겐, BMW 등 독일 브랜드는 국가 이미지도 높였다.
이런 독일에 대형 악재가 터졌다. 국민기업 폭스바겐이 진흙탕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탈출 시도가 쉽지 않다. 자꾸만 더 깊이 파묻힌다. 하루아침에 국가브랜드를 디스카운트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폭스바겐 연비조작 사건은 고객 신뢰를 훼손한 기업이 직면할 수 있는 악재의 결정판이다. 단순 기술결함이었다면 사태가 이 정도로 비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신의성실 원칙과 상도의를 어긴 대가는 혹독하다. 자동차 판매량은 급감했다. 더 큰 문제는 진정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현금보상 계획을 밝혔지만 집단소송 움직임은 확산 분위기다.
자동차 산업사에 한 획을 그은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 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고경영자(CEO)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선장의 과욕과 부주의, 선원과 커뮤니케이션 부재에 따른 대가는 엄청나다. 배가 산으로 가거나 중간에서 표류하거나 좌초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실제 디젤게이트는 최고경영자(CEO) 과욕이 화근이었다. 제네바 모터쇼에서 2015년 3월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30% 감축하겠다는 공언이 발단이었다. 이후 직원과 CEO 간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달성하기 힘든 과제를 받은 직원은 눈속임이라는 꼼수를 선택했다. 주변에는 예스맨밖에 없었던 것일까. 최고 자동차 회사라는 강한 자부심과 자만심 탓이었을까. CEO가 사후관리에 소홀했고 직원은 불통 속에 엄청난 일을 꾀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폭스바겐은 당분간 정직하지 못한 기업이 경험할 무수한 도전에 직면할 게 뻔하다. 최근 일부 외신에는 회사 존립문제까지 거론하는 보도도 잇따른다. 동종 자동차 업체 중 지속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업체로 평가받았던 폭스바겐이 당혹해 하는 이유다. 폭스바겐이 당분간 시속 200㎞를 내기는 힘들다. 아우토반을 달리던 폭스바겐 자동차가 안개가 가득한 가시밭길을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시계 제로 상황이다. 앞으로 관전 포인트는 ‘대마불사’론이다. 독일 국민차가 앞으로 울퉁불퉁하고 꼬불꼬불한 길을 어떻게 달릴지 주목된다. 독일은 저력이 있는 나라다. 과거 아우토반에서 신선한 경험을 줬던 한 가지 인연만으로 폭스바겐의 멋진 재기를 기대해 본다.
김원석 국제부장 stone20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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