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국의 마르코니를 기다리며

[기고]한국의 마르코니를 기다리며

일제 강점기이던 1933년 11월 어느 날, 일본을 떠나 인천항에 도착한 연락선에서 한 중년 신사가 부인과 내린다. 그는 21세때 전파를 이용한 무선통신을 발명, 노벨상을 받고 무선혁명을 일으킨 구글리엘모 마르코니였다. 그는 8일간 한국에 머무르며 관광을 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마르코니가 개발한 무선전신은 1910년, 라디오방송은 1927년 각각 도입돼 이 땅에 전파 이용 역사가 시작된다. 하지만 그로부터 80여년이 지난 90년대 초까지 우리나라 전파 이용은 극히 미미했다. 특히 분단 상황에서 국가 안보를 이유로 전파이용을 엄격히 규제해 ‘전파 이용자는 군과 경찰 아니면 간첩’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였다. 그러다 88올림픽을 계기로 정부 전파정책이 규제 위주에서 이용 촉진 위주로 전환돼 전파 이용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 전파산업 수준으로는 이를 충족시킬 수 없어 거의 고가 외산장비에 의존해야 했다. 차량용 휴대전화 한 대 값이 웬만한 소형차 값과 맞먹을 정도였다.

이에 정부는 우리나라 전파산업 육성을 위해 1990년대 초반 관련 법제도를 정비하고 전파산업 육성정책을 마련해 시행했다.

전파산업 발전을 주도할 한국전파진흥협회 설립을 비롯해 각종 기술개발 지원과 시장 창출 등 정책적 지원이 잇따랐다. 대학에 전파공학과 개설에 필요한 장비와 장학금 등을 지원해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전파 전문인력을 길러낼 수 있도록 하는 인력양성 정책도 시행됐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우리나라는 짧은 시간 내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동영상 등 대용량 데이터를 마음껏 이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 간 통신을 넘어 사물이 무선으로 인터넷에 연결되면서 인간 생활에 일대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방송은 초고선명TV를 전파로 수신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전파 이용이 늘자 한정된 주파수 자원을 배분하고 효율적으로 쓰는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한국 무선 인프라를 마르코니가 다시 살아나 보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82년 전 이름조차 생소했을 이 땅을 마르코니가 방문한 것도 앞으로 여기가 무선혁명을 주도할 나라라는 어떤 직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 전파산업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우리나라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해외시장은 중국의 저가 물량공세에 밀려 고전 중이다. 다시 한 번 정부와 전파산업계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전파산업의 미래를 위해선 전파에 대한 국민의 인식 제고와 전파인재 양성이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그리고 의료, 교통, 보안 등 국민생활과 밀접한 생활 전파산업을 집중 육성해 국민 삶의 질을 높이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마침 23일부터 1주일간 전파자원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창의적 전파 활용과 산업 활성화 촉진을 목적으로 하는 전파방송산업 진흥주간 행사가 열린다. 전문 기술적인 행사도 많지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따뜻한 전파세상 사진·웹툰·동영상 공모전’이나 ‘전파 활용 창의 경진대회’ 수상작 전시회 등이 눈길을 끌 만 하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갖춘 제2의 마르코니가 많이 나와 우리나라 전파산업을 한 단계 도약시키길 기대한다.

강철희 한국전파진흥협회 상근부회장·고려대 명예교수 chkang@rap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