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이 취임 2년째 출범시킨 ‘정보통신부’는 지금 우리나라가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에 오르는 초석이 됐다. 김 전 대통령 이전에도 국가 정보화 등 정보통신 투자는 계속 있어왔다. 김 전 대통령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투자하고 이행해왔던 정보통신 관련 국가 정책을 하나의 부처가 집대성해 펼치도록 한 것에서 이전과 달랐다. 정통부는 당시 IT를 중심으로 글로벌 경쟁체제가 재편되는 움직임을 감지하고, 출범하자 마자 국가적 선제 대응에 나섰다. 21년 전 이미 미래부처였다.
◇세계 최고 ICT 국가 초석
정통부 출범은 ‘ICT 코리아’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정통부는 1994년 12월 23일, 기존 체신부를 확대 개편해 발족했다. IT 정책을 전담하는 독립 부처가 출범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처음이었다. 정통부는 기존 체신부 기능에 정보화 정책 수립, 정보통신 산업 육성, 전파방송 정책, 통신 정책 및 기술개발 등의 업무를 더했다.
정통부는 출범 직후부터 국가 정보화를 위한 업무를 발 빠르게 추진했다. ‘산업화는 뒤졌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구호와 함께 출범 이듬해인 1995년 ‘정보화촉진기본법(현 국가정보화기본법)’을 제정했다. 법에 따라 5년 단위 국가정보화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체계적인 정보화 사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현재 세계 최고의 유·무선 인프라를 갖추는데 시발점이 된 초고속정보통신망 사업도 이 계획의 일환으로 실시됐다. 우리 기술로 개발한 전전자교환기(TDX)는 정부의 강력한 확산 드라이브와 맞물리며 대중화에 성공했다.
1996년에는 정통부 최고 성과 중 하나로 평가되는 세계 최초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이동통신 상용화라는 쾌거를 이뤘다.
CDMA 상용화는 국내 이동통신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한 수많은 휴대폰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우리나라는 GSM(유럽식) 방식이 주도하던 글로벌 시장에서 CDMA로 맞불을 놓았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휴대폰 업체들은 CDMA를 상용화한 국내를 테스트베드 삼아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다.
◇초고속 인터넷 기반 산업 발전
CDMA 이후에도 3G, 와이브로, 4G분야에서도 우리나라는 글로벌 이동통신시장 주도권을 잡고 있으며, 현재도 5G 시장 선점을 위한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촘촘한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도 정통부가 주도했다. 1995년 1단계 사업 때는 KT의 주요 전화국까지 광케이블(기간망)을 구축했다. 이를 기반으로 각 통신사업자가 각 가정까지 비대칭형 디지털 가입자망(ADSL)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었다. 국책사업으로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에 나섰다. 현재도 우리나라는 초고속인터넷 인프라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탄탄한 인터넷 인프라는 국민 인터넷 사용 확대로 이어졌고, 무엇보다 2000년을 전후해 세계적인 닷컴 열풍이 불었을 때 인터넷 기반 벤처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네이버와 다음 등 지금까지 벤처신화로 불리는 기업들이 나타나고, 넥슨, 엔씨소프트, 한게임, 넷마블 등 세계적인 게임기업도 대거 등장하는데 있어 정통부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국정보화진흥원 관계자는 “초고속 정보통신망은 인터넷산업 발전 외에도 공공분야 전자정부의 기반이 됐고 학교 인터넷 발달로 교육환경 고도화에도 기여했다”며 “이후 2004년 방송통신 융합을 위한 광대역통합망(BcN)을 거쳐 향후 초연결시대를 위한 초연결지능망 사업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편적 정보화 종합적으로 추진
정봉통신산업계는 김 전 대통령과 정보통신부의 주요 업적 중 하나로 정보화촉진기본법 제정을 꼽는다. 6장 36조와 부칙으로 구성된 이 법은 국가정보화 촉진과 기반 조성, 정보통신 고도화를 위한 법적 근거가 됐다.
이 법을 근거에 정보화촉진과 통신산업 진흥정책을 심의할 기구로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정보화추진위원회가 설치됐다. 목표점 없이 단편적으로 추진되던 정보화 사업이 범국가적으로 종합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초대 정통부 장관을 지낸 경상현 현 ICT대연합 회장은 “최초로 범 정부적인 정보화 추진 계획을 만들고 정부화추진위원회를 가동한 것은 굉장히 중요한 변화의 계기”라며 “이를 통해 정보화 촉진기금이 생겨나게 됐고 종합적이고 균형적인 정보화 사업이 가능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정통부는 독자적 무선플랫폼 위피(WIPI)와 4세대 이동통신 와이브로 등으로 갈라파고스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하지만 정통부가 없었다면 현재의 정보화 수준에 도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
경 회장은 “김 전 대통령은 정통부 시절 여러 사업을 많이 지원하고 이끌어줬다”며 “공직을 떠난 이후 자주 볼 기회는 없었지만 서거 소식을 들으니 유난히 안타깝고 서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보통신부 주요 연혁(자료:정부 종합)>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