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비업계 덩치 더 키워야 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기업 세메스가 연간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3분기에 1조1000억원을 올렸고 연말까지 1조2000억원을 달성할 전망이다. 한국 장비기업이 1조원 고지를 넘은 것은 처음이다.

장비업계에서 매출 1조원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 프로골퍼 박세리가 LPGA 무대에서 처음 우승한 것에 견줄 만하다. 박세리가 처음 우승 관문을 열자 한국 선수 우승이 봇물처럼 터졌다. 영원한 마이너 취급받던 한국 장비업계도 세계 무대에서 겨룰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그동안 한국은 반쪽짜리 반도체·디스플레이 최강국이었다. 삼성전자, 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우리 기업끼리 세계 정상을 다퉜다. 하지만 장비 대부분을 일본이나 미국에서 수입했다. 덕분에 장비시장 1위 기업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AMAT) 지난해 매출은 11조원에 달했다. 해외 유수 장비기업 매출을 합치면 삼성디스플레이나 LG디스플레이가 벌어들이는 매출을 상회할 정도다.

소자산업을 석권하고도 장비산업에서 부진한 것은 그만큼 기술진입 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거금의 연구개발비를 투입하지 않으면 핵심 기술력을 확보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해외 유수기업도 규모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인수합병(M&A)에 적극적이다. 세계 1, 2위인 AMAT와 도쿄일렉트론이 합병을 시도하기도 했다. 국내 기업은 이런 면에서 여전히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마다 오너십을 고수하다 보니 과감한 M&A도 이뤄지지 않는다. 세메스 매출 1조원 돌파는 지난해 세크론 등 3개사와 합병한 것이 주효했다.

장비업계도 이젠 세계무대를 겨냥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규모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마인드 전환이 시급하다. 정부와 소자업체도 장비업계가 규모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해외 유수기업도 ‘덩치 키우기’에 혈안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