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장비 시장은 크게 통신사업자·일반 기업·공공으로 나뉜다. 국내 이동통신 3사가 네트워크 설비 투자로 장비 수요의 절반 이상을 담당한다. 기업과 공공 분야도 만만치 않다. 사설 네트워크를 구축하거나 공공기관·지방자치단체가 독자 네트워크를 운영하면서 시장 수요를 주도한다.
그러나 국산 네트워크 장비 업계는 공공시장을 언급할 때마다 고개를 젓는다. 국산 장비업체는 “우리가 들어갈 만한 시장이 아니다”며 국산 장비 업체에 몸담은 사람 가운데 열에 아홉은 불만을 토로한다.
민간 기업이 특정 장비를 선호한다면 이해가 간다. 시장 논리가 우선이라는 변명도 가능하다. 정작 국내 산업과 기업에 기여해야 하는 공공 분야가 외산 장비에 목을 매는 상황이 답답할 뿐이다.
국내 정부·공공기관 등 공공 분야의 외산 네트워크 장비 사랑은 다른 나라와 사뭇 다르다. 중국은 과거 기간망 네트워크 공유기 제품 70%를 시스코에서 도입했다. 최근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중국 국영통신업체 차이나텔레콤을 중심으로 공공에서 ‘시스코 걷어내기’가 한창이다. 보안 이슈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묘한 알력싸움 탓도 있다. 더 본질적인 이유는 자국 기업을 보호하고 산업을 육성하려는 중국 정부의 의지가 깔려 있다.
중국과 상반된 국내 공공 시장의 맨얼굴은 국가종합전자조달 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정 외산 브랜드 제품을 규격서에 버젓이 박아둔 구매·입찰 건이 수두룩하다. 오히려 업계에서는 벤치마크테스트(BMT)로 경쟁력 있는 네트워크 장비를 공급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달라고 아우성이다. 해외 시장에 수출할 만큼 국산 장비 기술력과 품질이 인정받고 있는데 정작 국내 공공 시장에서만 외면 받는다.
정부도 문제를 인식했는지 1일 ‘정보통신기술(ICT) 장비 신뢰성 지원센터’를 열었다. 네트워크·컴퓨팅 장비 신뢰성 검증을 위해 개발·상용화·사업화 전 주기를 지원한다. 국산 장비 도입을 확산하기 위해 마련된 센터는 분명 환영할 만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공공 시장 저변에 깔린 외산 제품 선호 관행을 바꾸는 일이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