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삼성전자 세탁기 파손’ 혐의로 피소된 조성진 LG전자 홈어플라이언스(HA) 사업본부장(사장)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을 보려고 수많은 언론과 업계 인사가 모여들었다. 공판 내내 눈을 감고 있던 조 사장은 무죄 선고가 내려진 뒤에도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1년 이상을 끌어온 사건으로 마음고생이 심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조 사장에게는 ‘고졸신화’ ‘세탁기 장인’ 등 여러 수식어가 붙어 있다. 실제로 30년 이상 세탁기 연구에만 매진해 왔다. 출장지에서도 세탁기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가전매장에 가면 다른 회사 제품을 살펴보는 일도 당연히 있었다.
문제가 발생한 것은 지난해 9월 독일 베를린 가전매장에서다. 경쟁 관계인 삼성전자 매장에 들러 신제품 세탁기를 살펴봤다. 이 과정에서 하중을 체크하는 등 테스트도 했다. 조 사장 일행이 다녀간 후 삼성 매장 직원이 세탁기 파손을 발견했고 논란 끝에 검찰 수사까지 이어졌다.
이후 삼성과 LG는 지난 3월 소모적인 논쟁을 종식하자는 차원에서 대승적 합의를 했다. 삼성은 조 사장에 대한 고소 취하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법원에 전달했다.
그럼에도 검찰이 공소를 취소하지 않으면서 결국 재판까지 이어졌다. 법원 판결로 조 사장은 1년 3개월이라는 긴 논란 끝에 경쟁사 제품을 고의로 파손했다는 혐의를 벗었다.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이번 일이 법원까지 갈 일이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경쟁 관계지만 삼성과 LG가 조금 더 합리적으로 의견을 나눴다면 지금처럼 사건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검찰 대응이 아쉽다는 목소리도 적지않다.
세탁기 파손 논란은 외신까지 대대적으로 보도할 만큼 많은 관심을 끌었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국내 생활가전을 대표하는 두 기업 이미지가 좋지 않게 포장되는 것은 당연했다. 국가 산업 측면에서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모든 이해 관계자가 판결 이후 법원의 당부를 마음에 새겼으면 한다. “법정에서는 무죄가 나왔지만 양사 모두 기술개발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더라도 대한민국 대표 기업인 만큼 상호 존중하는 자세를 잊지 말아달라”는 내용이다.
전자자동차산업부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