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부품 업체 A사는 올해 2월 화웨이를 방문했다. 개발한 스마트폰 부품을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제품을 설명하자 깜짝 놀랄 반응이 돌아왔다. 자기들과 바로 일을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허언이 아니었다. 첫 미팅이 끝나고 불과 며칠 후 화웨이는 자사 핵심 기술진을 한국으로 보냈다. 화웨이는 그 때부터 A사에 상주하다시피 했다. 중국에 가서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락 해왔다. 어떻게 하면 신기술을 탑재해 사용이 편한 스마트폰을 구현할 수 있는지 오히려 묻고 공부해갔다.
공동 개발 7개월, 최종 완성품이 나왔다. 화웨이는 스마트폰을 들고 독일로 향했다. 각국 기자들이 모인 국제가전전시회(IFA)에서 폰을 꺼내 들었다. 오렌지를 올려 무게를 재는 시연으로 이목을 집중시킨 ‘메이트S’였다.
화웨이는 이 발표로 세계 최초 포스터치폰 제조사가 됐다. 포스터치는 화면을 누르는 힘의 세기를 감지하는 기술이다. 애플이 ‘멀티터치 차세대 기술’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공을 들인 비장의 무기였다. 애플은 ‘최초’ 타이틀을 화웨이에 빼앗겼고 경쟁자도 만났다.
화웨이가 포스터치를 위해 구애를 보낸 A사가 바로 ‘하이딥’이란 국내 기업이다. 2010년 설립돼 이름조차 생소한 벤처지만 화웨이는 실적이나 명성에 얽매이지 않고 기술 자체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화웨이와 하이딥 사례를 취재하면서 주목한 건 누가 어떤 기술을 먼저 개발하고 채택하는지에 있지 않았다. 결단과 실행이었다. 중국 정보통신기술(ICT) 공룡으로 불리는 화웨이지만 그들은 승부를 거는데 주저하지 않고 누구보다 과감했다. 고범규 하이딥 대표는 “빠른 의사 결정과 실행이 인상적이었다”며 “다른 기업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라고 전했다.
한국 스마트폰 산업이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했다는 우려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타도 삼성’을 외치는 화웨이와 같은 속도라도 유지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삼성전자가 중국에서 1위 자리를 놓치고 LG전자가 세계 시장에서 화웨이에 역전 당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철저한 분석과 자기반성이 필요한 때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