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윤종용 전 국가지식재산위원장을 수식하는 말은 차고 넘친다. 샐러리맨의 신화, 창조와 혁신 리더, 가장 닮고 싶은 최고경영자(CEO), 존경받는 CEO 등이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다. 윤 전 위원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서 45년간 재직했다. 이중 18년을 삼성전자 가전부문 대표이사, 삼성전기와 삼성전관 대표이사 사장, 삼성전자 총괄 대표이사 사장,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일했다. 삼성전자를 세계 초우량기업으로 발전시킨 주역 중 한 사람이다. ‘세계 최고 경영인 17인(2003년 비즈니스 위크)’과 ‘영향력이 큰 아시아 기업인 1위(2005년 포천)’ ‘세계100대 CEO 3위(2012년 하바드비즈니스리뷰)’에 뽑힌 한국 최고 경영인이다.
윤 전 위원장을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난해 12월 임기 2년인 국가지식재산위원장을 연임하고 공직을 그만뒀다. 여유가 넘쳤다. 사무실 두 개 벽면에 놓인 책장은 동서양 인문학과 과학기술 책으로 가득했다. 새 유럽의 역사, 근대의 탄생, 축의 시대, 우주의 구조, 사기열전, 사기본기, 손자병법, 국부론, 대항해시대, 주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벽에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액자가 하나 걸렸다.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나.
▲건강은 좋다. 3년 전 고관절을 다쳐 수술을 받았다. 특별한 건강비결은 없고 매일 오후 한 시간 정도 피트니스에서 운동한다.
-올해 우리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나.
▲세계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해 우리 경제도 어려울 것으로 본다. 중국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기름 값은 떨어졌다. 미국은 금리를 올렸다. 경기침체로 수출은 줄고 국내 가계부채는 증가하며 소비가 감소할 것이다.
-샐러리맨 신화가 된 비결이 궁금하다.
▲무슨 비결이 있나. 경청하고 독서하며 세상을 넓게 보면서 훌륭한 경영자가 되고자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나는 삼성에서 18년간 대표이사로 일했다. 신규 사업이나 어려운 일을 많이 맡았는데 최선을 다하며 경영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천만금을 준다한 들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을 경영할 기회가 있겠나. 나처럼 운이 좋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신규 사업에 차출 당했을 때 피하고 싶지 않았나.
▲나는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호기심이 있으니까 열정이 생기고, 그 열정으로 도전했다. 힘들지만 성취하는 게 즐겁고 재미있지 않나.
-기업가 정신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보나.
▲호기심과 열정, 창의력, 도전정신이다. 성공한 사람은 호기심과 열정이 대단하다. 위대한 기업가는 불굴의 도전정신과 승부사 기질, 시대 변화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창의력을 가졌다.
-18년간 대표이사로 재직했는데 당시 하루 일과는.
▲정시에 출근하고 퇴근했다. 대표이사가 회사에 늦게까지 있는 건 좋지 않다.
-초일류 기업이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초일류 기업은 지속성장하는 장수기업이다. 건전한 재무구조와 수익을 내는 제품, 사업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자면 지금까지 가치관, 일하는 방식, 사고방식을 모두 혁신해야 한다.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고 고객을 만족시켜 사랑과 신뢰를 받아야 한다. 요즘 초일류 기업에 도전하는 우리 기업이 별로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현실에 안주하며 수성에 급급한 모습이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선대회장이나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분이다. 초일류 기업은 경영혁신으로 최고 경쟁력을 유지한다.
-혁신 리더로 불리는데 혁신을 어떻게 추진해야 성공하나.
▲혁신 목표와 논리가 분명하고 구성원 공감을 얻어야 한다. 최고 경영자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자기를 희생하며 솔선수범해야 한다. 혁신은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확대해야 한다. 구성원에게 지속적 교육을 실시하고 혁신 성과에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
-“혁신리더는 예측하는 게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라고 했던데.
▲미래는 예측하거나 기다리는 사람 것이 아니다. 도전해서 창조하는 사람 것이다. 미래는 만드는 것이다.
-창조 원동력은 무엇인가.
▲호기심이다. 이스라엘 교육은 질문하는 교육이다. “왜”라고 세 번 만 질문하면 밑천이 드러난다. 4번 질문하면 본질에 들어간다.
-과거 인재를 선발할 때 우선한 기준은.
▲나는 성실하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 도전하는 사람을 우선했다.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게 사람이다. 호기심이 있으면 열정이 생기고 도전한다.
-불투명한 미래를 어떤 자세로 극복해야 하나.
▲미래는 늘 불투명하고 위기는 도처에 엎드려 있다. 위기는 잘나거나 호황일 때 닥친다. 현실에 안주하거나 미래 대비가 소홀하면 위기가 나타난다. 항상 위기의식을 갖고 미래에 과감히 도전해야 한다. 산업화 시대 ‘새마을 운동’ 같은 새 국가 건설운동을 전개해 국가를 개조·개혁해야 한다. 특히 정치인이 변해야 한다.
-정치권에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사회는 엄청 변하고 발전했는데 정치인들은 과거 틀에 갇혀 있다. 정치인이 가치관, 사고방식, 역사인식, 현실인식, 일하는 방식을 혁신해야 한다. 사이버테러법안을 비롯해 경제 활성화 관련 법안을 빨리 처리해야 한다. 정치가 안 바뀌면 미래가 없다.
-한국 미래성장동력을 어디서 찾아야 하나.
▲과학기술과 경제성장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자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정보통신기술(ICT)과 신재생에너지, 나노분야, 정밀전기, 전기자동차산업, 정밀화학, 바이오와 제약 같은 첨단기술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재래전통 산업에서도 고부가가치 명품을 만들 수 있다.
-중국 추격이 거세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중국은 세계 20%에 달하는 인구를 가진 세계 생산 공장이자 가장 큰 단일 시장이다. 이미 G2국가가 됐다. 조만간 G1이 될 것이다. 중국은 13세기까지만 해도 서양에 종이와 인쇄술, 나침판, 화약이란 4대 발명품을 전해 줄 정도로 부유하고 과학기술이 앞선 나라였다. 우리가 중국과 모든 분야에서 경쟁할 수 없다. 부가가치가 높고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세계 명품을 만들어야 한다. 우수인력을 양성하고 과학기술 개발과 혁신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CEO의 덕목은.
▲지혜와 통찰력, 예지력이 있어야 한다. 늘 위기의식을 갖고 변화를 주도할 리더십과 카리스마가 필요하다. 인재를 양성하고 솔선수범하며 현장경영을 해야 한다. 수치에 밝고 산업사와 경제사, 세계사를 잘 알아야 한다.
-이공계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데.
▲인류 역사는 도구발명과 과학기술 혁신으로 발전했다. 이공계 인력 확보 없이 사회발전은 어렵다. 정부는 과학기술 시설과 실험실습 기자재를 확대하고 해외 우수 유학생을 유치해야 한다. 장학금 지급도 확대해야 한다. 여러 부처에 흩어진 이민 업무를 통합해 ‘이민청’을 설립해야 한다. 저 출산과 인구감소는 심각한 문제다.
-대안은 무엇인가.
▲우선 과학기술인 정년을 65세로 늘려야 한다. 과학기술계 인사들이 가능한 오래 전공분야에서 연구 활동을 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산하 과기기관장은 최소 5년 임기를 보장하고 중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장기 구상을 갖고 일관성 있게 연구를 할 수 있다.
-첫 공직을 끝내고 소회가 있다면.
▲공무원은 다 유능하고 일도 열심히 한다. 국가관도 확고했다. 그런데 왜 행정은 국민기대에 미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이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어떤 책을 주로 보나. 추천하고 싶은 책은.
▲산업사와 경제사, 과학기술사 같은 역사서적을 읽는다. 추천도서는 ‘부의 탄생’이다.
-기업인에게 당부의 말은.
▲위기는 반복한다. 항상 우리 주변을 맴돈다. 지나치게 위축하지 말고 자신감을 갖고 극복해야 한다. 위기는 극복 대상이다. 경영자는 항상 솔선수범하고 현장 경영을 해야 한다.
-좌우명과 취미는.
▲정심(正心)과 성실, 인내, 감사가 좌우명이다. 취미는 독서와 골프다.
윤 전 위원장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15년 전 CEO로 너무 바빠 중단했다. 2004년 2월 출간한 ‘초일류로 가는 생각’은 기업의 현장경영 지침서로 윤 전위원장이 직접 원고를 작성했고 2007년 내용을 보완해 재출간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 3년간 백부에게 새벽 1시간씩 한학을 배워 천자문과 동몽선습, 명심보감, 소학 대학을 익혔다. 서예도 수준급이다. 요즘은 외부 강연만 한다. 현직에 있을 때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초빙교수로 후학을 지도했다.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장,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한국전자공학회장을 두루 역임했다. 2004년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설립 발기인으로 참여해 현재 이사장이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