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16’의 핵심 코드는 자율주행차, 인공지능, 로봇, 가상현실(VR)이었다. 가전전시회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전시회 주력 제품이었던 가전을 제치고 최첨단 기기가 열띤 경연을 펼쳤다.
특히 VR은 오랜 잠복기를 끝내고 시장 개막을 알렸다. 삼성전자, 오큘러스, HTC 등 수많은 기업이 VR 기기와 콘텐츠를 소개했다. 삼성전자는 ‘기어VR’과 4D의자로 360도 입체 영상을 체험할 수 있는 ‘기어VR 4D 체험존’을 운영했다. 기어VR로 가상현실을 체험하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 4D 의자를 통해 마치 실제 롤러코스터를 탄 느낌을 관람객에게 전달해 큰 인기를 끌었다.
VR은 이미 오래전부터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혔다. 기대와 달리 성장은 더뎠다. 항상 주목을 받았지만 시장 진입에 실패했다. 기술 진척이 늦고 디바이스 가격이 비싸 대중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전문가들은 올해가 VR 대중화 원년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머리에 쓰고 VR를 즐길 수 있는 헤드마운티드디스플레이(HMD)가 올해부터 본격 판매된다.
오큘러스 ‘리프트’, HTC ‘바이브’, 소니 ‘플레이스테이션VR’ HMD가 올해 소비자 판매를 시작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증강현실(AR) HMD ‘홀로렌즈’도 기대주다.
오큘러스 리프트는 3월 출시된다. 오큘러스는 2014년 페이스북에 23억달러에 인수되며 주목 받았다. 1월 7일부터 예약 판매를 시작해 599달러(약 71만원)에 달하는 가격이 실망스럽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예약 판매는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정식 출시일은 3월 28일이지만 예약 구매 하루만에 6월 분량까지 매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HTC가 게임 업체 밸브(Valve)와 공동 개발한 HMD 바이브는 4월 출시된다. 2월 29일 예약판매를 실시한다. 아직 정확한 가격은 알려져 있지 않다. 오큘러스 리프트와 비슷하거나 더 높을 것이라고 외신은 예상한다. 정확한 가격 및 최종 출시일은 예약판매가 시작되는 2월 29일 이전 발표될 예정이다.
소니는 올해 상반기 플레이스테이션VR을 출시할 예정이다.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VR을 출시하면서 약 100여개 VR게임도 함께 내놓을 계획이다.
HMD는 VR를 즐기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춰야할 장비다. 머리에 쓰는 3D 디스플레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사용자에게 깊은 몰입감을 줘 실제 경험을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장비다.
그러나 비싼 가격이 걸림돌이었다. 미국 브이피엘(VPL)이 1989년 6월 내놓은 가상현실 체험기 ‘아이폰 모델1’은 당시 100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렸다. 기술 발달로 기기 제조비용이 크게 떨어지면서 HMD가 대중화에 접어든 것이다.
기술 발달도 HMD 기기 보급을 촉진하고 있다. 가상현실을 실제처럼 느끼는 몰입감을 높이려면 화면이 실제와 유사해야 한다. 시야각, 해상도, 반응속도 등이 중요하다. 우리 눈이 보는 것처럼 넓은 범위를 한번에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해상도가 높아 만들어진 화면이라 느끼지 않아야 한다. 또 고개를 돌릴 때 보여지는 사물 변화 등이 빠르고 자연스러워야 한다. 오큘러스 리프트와 HTC 바이브는 이런 문제점을 개선한 제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HMD 대중화로 이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앞으로 10~15년 뒤 컴퓨터나 스마트폰 대신 VR 기기를 착용하고 컴퓨팅을 하는 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상했다. 사람들이 마우스나 키보드처럼 HMD를 착용하고 PC 환경을 즐기는 시대가 올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1990년대와 달리 현재는 그래픽 등 컴퓨터 성능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VR를 구현할 수 있는 충분한 환경이 조성됐다”며 “1990년대 PC 대중화,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 대중화처럼 VR도 빠른 속도로 대중화가 될 것이다”고 분석했다.
HMD는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 진보 촉매제가 될 전망이다. 게임이 HMD수요가 가장 많은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슈퍼데이터리서치는 올해 VR게임 시장은 51억달러(약 6조1200억원)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2017년 89억달러, 2018년 123억달러를 기록, 가파른 성장세를 보일 전망이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시장 연평균 성장률(CAGR) 추정치는 16.8%다.
건축, 의료, 이미지트레이닝, 쇼핑, 교육 등에서도 헤드셋 이용이 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3차원 건축설계 프로그램을 이용해 건물을 설계한 뒤 HMD를 쓰고 보면 실제 건물이 지어졌을때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등을 쉽게 알 수 있다. 실제 세워질 곳에 가상으로 건물을 만들어 주변 풍광과 비교하며 설계를 고치는 일도 가능하다.
의료 분야에서는 VR이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미국 워싱턴대 하버뷰 화상센터에선 환자를 치료할 때 눈밭으로 뒤덮인 가상현실을 보면서 치료를 받게 한다. 화상 환자가 차가운 환경에 놓여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어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문제는 콘텐츠다. 관련 디바이스 시장이 성장하는 만큼 기기에 활용 가능한 콘텐츠가 뒷받침돼야 한다. 디바이스와 콘텐츠 간 기형적 산업 발전을 막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분야에 적용 가능한 관련 콘텐츠, 아이디어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