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애플발 삼성 수직계열화의 균열

[데스크라인]애플발 삼성 수직계열화의 균열

미워하면서 사랑한다. 삼성과 애플 관계다. 특허로 사생결단을 낼 것 같더니 다시 끈끈해졌다. 애플이 삼성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구매하기로 한 게 압권이다. 특허전쟁에 몰입돼 있던 이가 볼 땐 황당하다. ‘핵전쟁’ 불사하던 이들 아닌가.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 비즈니스 세계에 헛웃음이 나온다. “삼성, 애플 대단하다.”

관점을 바꿔보자. 상징적 사건이 아닐까. 삼성디스플레이는 메이저 고객 두 곳을 확보했다. 그간 OLED 생산량 90% 이상을 삼성전자가 독식했다. 수요 독점이 깨졌다. 신호탄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화웨이, 샤오미 등이 제3, 제4의 고객이 될 것이다.

삼성디스플레이뿐 아니다. 삼성전기, 삼성SDI 등 삼성 부품계열사 올해 화두는 ‘탈 삼성전자’다. 삼성전자 매출 의존도를 낮추자는 것이다. 중국 매출 비중 확대가 으뜸 미션이다. 배경은 두 가지다. 삼성전자 TV와 휴대폰 성장세가 꺾였다. 중국 성장세는 무섭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자는 경고음이 들린다. 심지어 삼성전자 내 반도체사업부에서도 나온다.

크게 보면 패러다임 변화다. 30여년 전 이병철 삼성 전 회장이 반도체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하나였다. 수직계열화였다. 소니, 샤프 등 일본 전자기업의 앞선 경영기법이었다. 이 전 회장은 숙고 끝에 반도체를 선택했다. 반도체를 씨앗으로 LCD, 배터리, 카메라모듈, OLED까지 파죽지세로 뻗어갔다. 삼성 수직계열화 힘은 대단했다.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서는 핵심엔진이었다. 부품 일류화는 세트 일류화로, 세트 점유율 확대는 부품 볼륨업으로 이어졌다.

삼성전자 모델이 경기 수원시 삼성디지털시티 쇼룸에서 초슬림 비디오월(UHF-E)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모델이 경기 수원시 삼성디지털시티 쇼룸에서 초슬림 비디오월(UHF-E)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선순환 메커니즘이 깨졌다.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수직계열화 균열은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매일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할 정도로 쑥쑥 크는 중국 전자산업이 입증해준다. 수직계열화 시대 종언이 성큼 다가왔다.

변화에 살아남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건희 회장의 밀라노 선언이 다시 떠오른다. 처와 자식 빼고 모두 바꾸자. 마인드 변화가 첫걸음이다. 삼성 부품계열사는 그간 삼성전자 세트에 복무하는 부속품 같았다. 삼성그룹 내에서도 당연시 하는 문화다. 이젠 부품이 세트보다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시대다. 반도체 종주국 미국을 보자. 전자산업 주도권을 일본에 뺏긴 뒤 부품산업으로 여전히 세계를 호령한다. 인텔, 퀄컴, 엔비디아 등은 중국 부상에도 여전히 건재하다. 세계 모든 기업에 제품을 공급하는 공급망을 갖췄기 때문이다. 특정 세트기업에 복무하는 마인드로는 결코 이룰 수 없다.

실리콘밸리 원조로 불리는 휴렛패커드(HP)는 계측기 회사로 시작했다. PC가 주력사업이 되자 계측기와 의료기사업부는 HP를 탈출했다. 이름도 애질런트테크놀로지로 바꿨다. 지난해 계측기 사업부는 거대해진 애질런트를 다시 박차고 나왔다. 사명도 키사이트로 바꿨다. 70년 넘게 계측기 시장 정상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삼성 부품계열사도 사명에 ‘삼성’ 로고를 떼는 것까지 고민해야 한다. 그만큼 심기일전이 필요하다.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브랜드는 TV 휴대폰의 전유물이 아니다. ‘인텔 인사이드’나 ‘퀄컴 스냅드래곤’은 ‘갤럭시’ ‘아이폰’에 견줄 브랜드다. 수직계열화라는 보호막이 걷힌다. 위기이자 기회다. 부품사 진짜 실력은 이제부터 판가름 난다.

장지영 성장산업부 데스크 jyajang@etnews.com

[데스크라인]애플발 삼성 수직계열화의 균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