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인 미디어]사람의 자리를 노리는 로봇

‘로봇은 인간에 해를 가하거나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에게 해가 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아이로봇 한장면
아이로봇 한장면

SF 소설의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 가운데 첫 번째다. 기술 발전으로 다양한 분야에 로봇이 적용되고 있다. 청소기부터 산업용 로봇까지 이제 로봇 없이는 생활이 힘들 정도다. 1원칙에서 언급한 해를 끼치기는 커녕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하는 고마운 존재다.

말도 잘 듣는다. 로봇에 인간 명령은 절대적이다. 굳이 2원칙 ‘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가 필요 없다. 처음부터 그렇게 프로그램 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양한 SF소설이나 영화에서는 로봇을 위협적 존재로 그리기도 한다. 로봇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뛰어넘어 오히려 인간에게 명령하고 통제하는 상상 속 로봇이 등장한다. 사람을 해치는 로봇도 있다. 2004년 개봉한 ‘아이, 로봇’이 대표적이다.

영화 속에는 양산형 로봇 NS-5를 통제하는 시스템이 있다. 비키라는 이름을 가진 대장격 로봇이다. 비키는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을 구금한다. 로봇 3원칙에 따르기 위해 ‘인간에 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위반한다. 일종의 모순인 셈이다. 비키 명령을 받은 NS-5는 주인공을 공격하기도 한다. 원래는 가사를 돕는 목적으로 개발된 로봇이다.

로봇은 끊임없이 발전하지만 그 결과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바뀌기도 한다. 사람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공격하는 아이로봇 속 비키처럼 말이다. 단순히 영화 속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직접 사람을 해치진 않는다. 하지만 사람 역할을 대체하면서 인간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3월 서울에서 알파고 인공지능 프로그램(오른쪽)과 이세돌 9단(왼쪽)이 인간의 자존심을 걸고 바둑 대결을 벌인다.
3월 서울에서 알파고 인공지능 프로그램(오른쪽)과 이세돌 9단(왼쪽)이 인간의 자존심을 걸고 바둑 대결을 벌인다.

구글이 개발한 알파고는 인공지능 바둑 컴퓨터다. 일종의 바둑 두는 로봇으로 봐도 무방하다. 유럽 프로바둑챔피언 판 후이 2단이 알파고에 당했다. 5전 5승을 거둔 알파고는 다음달 이세돌 9단과 맞붙는다. 구글과 바둑기사 간 자존심 싸움이다. 한편으로는 로봇이 사람과 경쟁할 만큼 지위가 올랐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하다.

미디어 영역에서도 로봇과 사람의 경쟁이 시작됐다. 최근 파이낸셜뉴스는 서울대 연구팀이 개발한 로봇 기사를 채용해 화제를 일으켰다. ‘IamFNBOT 기자’가 주인공이다. 기존 야구 경기 기사를 자동 알고리즘으로 구현하며 관심을 모았던 일종의 소프트웨어(SW)다. 기사도 제법 잘 쓴다. ‘경기의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키 플레이어는 손시헌이었다’처럼 다양한 표현을 데이터베이스(DB)화하고 있다. DB가 늘수록 문장은 더 매끄러워진다. 아직은 안정화 단계지만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면 인간 기자의 ‘자리’가 어느 정도 뺏길지 모를 일이다.

서울대 연구팀이 개발한 프로야구 뉴스로봇
서울대 연구팀이 개발한 프로야구 뉴스로봇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