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소 팹리스반도체 업계가 초긴장 상태다. 미국 반도체 전자설계자동화(EDA) 소프트웨어 업체 시높시스가 업계 전반에 대대적 뒷조사를 벌였기 때문이다. 자사 제품의 불법복제 이용 업체 적발이 목적이다. 회사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국내 10여개 업체에 고소·고발하겠다고 위협을 가해 신규 공급 계약을 따냈다. 시높시스는 과거 불법 사용 내역까지 공급 가격에 포함시켰고, ‘범법자’인 국내 중소업계는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인정에 읍소한 업체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왜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걸까. 사실 EDA툴 불법 사용을 둘러싼 논란은 거의 매년 반복되는 이슈다. 영세한 국내 중소 팹리스 반도체업체와 디자인하우스가 직접 구매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EDA툴은 엔지니어가 반도체를 설계할 때 활용하는 소프트웨어 도구로 시높시스, 케이던스, 멘토그래픽스 등 해외업체들이 100% 가까이 과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중소기업 육성 및 창업지원 차원에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을 통해 일정 사용료를 받고 EDA툴을 지원해 왔다.
문제는 지원 대상이다. 이번 조사를 벌인 시높시스는 정부 지원 기업 대상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하길 원하고, 국내 중소업체는 그 반대 입장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우리 정부 예산을 지원하는 수혜업체를 외국계 EDA업체가 정하는 이상한 현상까지 발생했다. 분명한 기준으로 외국업체와 협상하면 될 일을 지원기관도 기업도 봐달라고 읍소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기준 없는 정부 지원 정책이 EDA 지식재산권 인식을 흐리고 불법 복제를 부추긴 측면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게 반도체 강국 대한민국 정책의 현실이다.
아무리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갑’의 입장이라도 EDA툴 사업의 성격상 시장을 키워 성장하는 마케팅 전략은 필요하다. EDA툴 불법 사용 논란은 이제 끝내야 한다. 정책적 판단이 중요하다. 시스템반도체 육성에 정부 의지가 있다면 확실한 기준을 정해 현장에 맞게 당당하게 지원하면 된다. 그렇지 않다면 말로만 육성 정책은 접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