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방송업계가 4K(UHD)방송 녹화금지를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1970년대 VCR 녹화기능을 두고 벌어졌던 방송국과 가전업계 갈등이 다시 재연될 전망이다.
22일 니혼게이자이는 TV녹화기 제조업체와 방송사로 구성된 ‘차세대방송추진포럼’(NexTV-F)이 4K방송 녹화금지 기능 채택 논의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포럼은 4K와 8K 등 고해상도 방송 기술 사양을 검토하는 단체로 여기에서 마련한 규칙이 사실상 표준이 된다.
후지TV 등 민영방송 5개사는 포럼에 “방송 녹화를 금지하는 기능을 운용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이 기능은 TV방송국이 녹화를 제어할 수 있는 기능이다. 아날로그 방송에서는 불가능했지만 디지털로 바뀌면서 가능해졌다. 방송국이 송출시 설정한 복제 조건에 따라 녹화기 녹화 여부와 횟수가 제한된다. 무료 디지털 방송은 복제를 9회까지 인정하는 법이 2008년 도입됐다. 그러나 법적으로 가정에서 사적복제를 허용한 탓에 일본 방송국은 HD방송에서는 녹화 금지 기능은 활성화하지 않았다.
방송사는 4K방송에서는 녹화금지 기능을 활성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후지TV 관계자는 “4K 일부 프로그램에서는 녹화를 금지할 기술적 여지를 남기고 싶다”고 말한다. 화질이 좋은 4K방송 녹화를 허용하면 인터넷에서 해적판이 나돌고 블루레이나 주문형비디오(VoD) 수익에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주장이다. 민방 측은 복제가 불가능하면 방송국이 우수한 콘텐츠를 저렴하게 조달할 수 있어 시청자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제조사와 소비자단체는 반발했다. 녹화 금지가 실현되면 소비자에 미치는 영향이 큰만큼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파나소닉, 도시바 등 5개사는 “사용자 편의 저하로 이어질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방송 녹화 금지에 반대한다.
인터넷사용자협회와 주부연합회 등 소비자단체도 녹화금지에 반대 의견을 밝혔다. 복사 금지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며 대다수 선량한 일반 시청자에 불편을 강요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업자가 공동으로 일반 시청자 녹화를 금지할 수 있도록 합의하고 서로 제한하는 것은 카르텔에 해당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일반 소비자 단체를 포함한 열린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TV프로그램 녹화에 대해 콘텐츠 소유자나 방송국이 저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가정용 비디오녹화기가 보급되기 시작한 시대에 일어난 할리우드 영화사와 소니의 8년에 걸친 분쟁이다. 가정용 비디오녹화기가 등장하면서 할리우드는 녹화기를 영상산업 적으로 간주하고 소니와 녹화기를 홍보하는 광고 대행사, 녹화한 시청자를 대거 고소했다.
차세대방송추진포럼 관계자는 “서로 이론은 있다. 관계 부처와 소비자 등 다양한 관계자도 참가해 논의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