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의 삶은 굴곡이 많다. 북한에서 컴퓨터공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북한의 수재(秀才)들을 ‘사이버정보전사’로 양성하며 잘나갔다. 교수 시절에는 한국 영화와 음반 같은 영상물을 단속하는 109상무에서 불시 검문과 가택수사를 하는 이른바 ‘서슬 퍼런’ 조직에서 일했다.
하지만 사람 신분이 바뀌는 건 시간문제였다. 친한 친구로 인해 하루아침에 조선노동당으로부터 경고를 받고 집단농장으로 쫓겨났다. 이후 중국으로 갔다가 2004년 2월 한국에 왔다. 대학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강의하던 그는 2008년 북한이탈 지식인들과 연대 조직을 설립했다.
지난 2월 25일 오후 김 대표를 서울 성동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 대표 사무실은 10㎡(약 3평) 정도로, 책상 위에 놓인 작은 태극기가 눈길을 끌었다. 최근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이후 김정은의 대남 테러·사이버 테러 역량 결집 지시에 따라 추가 도발이 우려되는 긴박한 상황이다.
김 대표는 사이버테러와 해킹 대책으로 “사이버보안의 날을 정해 정기적으로 모든 컴퓨터를 점검해야 좀비PC를 막을 수 있다”며 “정부기관과 기업에 전산 인력과 별도로 사이버보안관을 배치하고, 매년 정부가 국민에게 컴퓨터 백신을 배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도 테러 대상자 아닌가.
▲ 나도 테러 대상자 8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김 대표는 주요 북한이탈 인사여서 신변 보호를 위해 관계 기관에서 밀착 경호를 한다.
-기분은 어떤가.
▲기분이 좋지는 않다(웃음). 해킹 방지를 위해 이메일도 2단계 인증 절차를 거친다. 그런데도 위협 메일이 수도 없이 들어온다.
김 대표는 함남 함흥에서 태어나 북한 김책공업종합대학 컴퓨터공학부를 졸업하고 스물네 살 때부터 함흥컴퓨터기술대학과 공산대학에서 컴퓨터 교수로 19년 동안 학생들을 지도했다. 공산대학에서 불법영상물을 단속하는 109호 상무 팀에 들어가 한국 영화나 음반을 단속했다. 북한식 표현을 빌리면 ‘자본주의 콘텐츠’ 단속이다. 상무 팀은 무소불위의 권력 기관이었다. 불시 검문과 집안을 언제나 수색할 수 있고, 심지어 지나가는 사람의 휴대폰도 검색했다. 적발한 콘텐츠는 회수해 상부로 보냈다. 이런 과정에 문제가 생겼다. 각별한 친구의 간청으로 회수한 영상물을 잠시 빌려 준 게 상부에 적발됐다. 이로 인해 김 대표는 조선노동당의 경고를 받아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집단농장으로 쫓겨났다. 2003년 중국으로 탈출했지만 계속되는 추격과 위험은 피할 수 없었다. 그는 2004년 2월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서 한신대, 경기대, 수원대에서 겸임교수로 강의했다. 현재 NK지식인연대 대표와 민주평통자문위원,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통일교육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생을 많이 했는데.
▲나는 고생도 아니다. 잡혀서 사형 당한 사람이나 여성들이 겪은 고초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사연이 소설 못지않다.
-북한 사이버테러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북한 사이버테러는 진행형이다. 규모가 문제지 크고 작은 사이버테러는 계속되고 있다. 북한은 늘 사이버테러 준비 태세에 있다. 지난날 사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2003년 1·25인터넷 대란으로 북한은 사이버공격의 위력을 깨달았다. 북한은 호박에 침주기 식이었지만 한국은 대혼란에 빠졌다. 2009년 디도스 공격에 이어 2012년에는 언론사 전산망에 침입해 데이터를 삭제했다. 2013년에는 금융기관 전산망을 동시다발로 마비시켰다. 기존 방식과 다른 공격을 했다. 미국 소니사와 방송국을 공격, 자신들의 사이버 능력을 세계에 과시하기도 했다.
-지금 주공격 대상은.
▲국가기반시설이다. 가스나 원전, 전력, 교통, 통신 같은 국가기반시설을 공격해 마비시켰다고 가정해 보라. 국가 시스템이 멈추는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한다. 테러나 해킹 기술은 다양하다. 지능형지속공격(APT)을 비롯해 사회 공학적 기법을 사용한다. 기존의 보안 시스템만으로는 막기 어렵다. 인터넷망을 폐쇄해도 사람을 공략해 해킹하거나 차단 서버에 접속한다. 절대로 안전한 것은 없다.
-북한은 언제 사이버부대를 창설했나.
▲1993년 중앙당 조사부 소속 기초조사자료팀을 50여명으로 구성했다. 5년 후인 1998년에 인원을 500명으로 늘렸다. 이들은 북한 내 최고 컴퓨터 인력이다. 사이버정보전사로 불린다. 이들은 내부에 가상훈련 센터를 설치, 치밀하게 준비했다. 5년 후인 2003년 첫 번째로 한국을 공격했다. 2009년 김정일은 사이버부대 활약상을 보고받고 “사이버 부대는 내 별동대이며 작전 예비대”라고 극찬한 뒤 “인력을 3000명으로 늘리라”고 지시했다.
-현재 북한 사이버테러 인력은 얼마로 보나.
▲현재 6000여명 선으로 안다. 이 부대는 정찰국 산하 225국 110연구소 소속이다. 명칭이 여러 개다. 중요한 건 인원수가 아니다. 사이버 전쟁은 머릿수로 하는 게 아니다. 개인 능력이다.
-북한은 사이버테러 조직과 달리 심리전부대가 따로 있다는데.
▲북한군 총참모부 소속의 적공국(局)이라는 조직이다. 적공국은 ‘적군와해공작국’을 줄인 말이다. 204소라고 부른다. 북한에서 ‘소’는 특수부대를 일컫는다. 적공국 204소는 사이버전 수행 조직과 연계해 남한의 국군, 사회지도층, 대학생,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허위 정보를 유출하고 여론을 교란하는 등 사회혼란을 조성하는 일을 한다. 인력은 1000명 정도이며, 앞으로 계속 늘 것으로 본다.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보라. 적공국에서 올린 탈북자 비난, 한국사회 비판, 북한 동영상이 2∼3년에 비해 급증했다.
-북한의 사이버기술 수준은.
▲ 미국과 중국에 이어 3위다. 북한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그동안의 사례를 보면 이해할 것이다. 북한의 좀비PC가 100만대라고 한다.
-한국에도 북한 좀비PC가 있나.
▲한국에 북한 좀비PC는 20여만대 된다. 좀비PC는 사용자도 모르는 사이에 해킹 숙주가 되는 것이다.
-대응책은 무엇인가.
▲좀비PC를 없애려면 새로 포맷해야 한다. 국가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사이버보안의 날을 제정해야 한다. 매월 민방위 날을 하지 않나. 이제는 사이버전에 대비해야 한다. 모든 국민이 컴퓨터를 점검, 적의 사이버 용병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이버전은 심리전이다. 해킹 대상은 국가기반시설이다. 외부와 연결하지 않는다고 해서 안전한 게 아니다. 그런 생각은 버려야 한다. 정부와 기업에 의무적으로 사이버보안관을 채용해야 한다. 정부가 전염병을 막기 위해 예방접종하듯 컴퓨터 백신을 국민에게 배포해야 한다. 배포 관리는 주민등록증을 확인해 철저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매년 업데이트해야 한다. 대학이나 정보보호 학원에서 사이버 전문 인력도 양성해야 한다.
-북한은 사이버 인력을 어디서 양성하나.
▲북한은 1993년부터 사이버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북한은 전국에 제1중학교를 설립했다. 일종의 영재학교다. 지역에서 1등 한 학생은 상위 지역 학교로 올라간다. 지금 평양에는 금성1·2중학교가 있다. 이 학교에 컴퓨터 영재반이 있다. 연 200명이 졸업한다. 이들은 최고대우를 받는다. 2인 1실 기술사 생활을 하며, 컴퓨터도 여러 대 준다. 이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사이버정보전사가 된다.
-사이버전사를 양성하는 북한 대학은.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평양컴퓨터기술대학, 함흥정보기술대학 등이다. 나도 대학에서 사이버정보전사를 키웠다.
-한국의 사이버대응책은.
▲법과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국가 대응 기관이 있지만 사물인터넷(IoT) 같은 기술 발전으로 위험은 갈수록 높다. 사이버 관련 정부 기관이 있지만 전체를 보호할 수 없다. 주요 국가 기관만 방어할 수 있다. 국민에게 현실을 제대로 알리고 계도해야 한다. 2015년에 악성 애플리케이션(앱)이 196개였다. 알리지 않으면 국민이 모른다.
-북한과 남한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차이가 있는가.
▲나는 북한과 한국에서 보안 솔루션과 컴퓨터 운용체계(OS)를 강의했다. 북한 대학생은 열심히 공부한다. 그게 출세하는 길이다. 한국 대학생은 자유분방했다. 격의 없고 활달했다. 북한은 교재가 한 종뿐이다. 미국 앨런 도너번이 쓴 OS시스템(The Go Programming Language)을 교재로 사용했다. 이곳에 와서 교재를 결정하라기에 서점에 갔더니 그게 있어서 그걸로 강의했다.
-NK지식연대는 언제 설립했나.
▲2008년이다. 구성원은 350명이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전문직 종사자들이다. 이공계가 70%다. 북한은 이공계 중심이다. 학술세미나, 북한 인권활동, 북한 실상 소개, 탈북자 권익 보호, 정착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 구로구에 삼정학교라는 북한이탈 청소년 대안학교를 설립, 교육사업도 한다.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 디지털 콘텐츠를 USB에 담아 북한에 보낸다. 자유아시아방송에 고정 출연, ‘IT 365’를 방송하고 있다. 전자신문은 애독하고 있다.
-좌우명과 취미는.
▲좌우명은 ‘이 또한 삶의 흔적이 되리라’다.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은 통일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한다. 통일 이후 남북 화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취미는 스케이트 타기다. 북한에서 학창 시절에 스피드 스케이트 대표였다. 지금도 태릉 아이스링크나 롯데월드 스케이트장에 가면 과거의 자세가 나온다. 하루 1시간 이상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새로운 희망을 찾아 사선(死線)을 넘어 한국에 온 북한이탈주민들에게 지식연대가 미래의 등불 역할을 해 주길 기대하며 인터뷰를 끝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