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합리적 통신소비 이끄는 중저가 단말 시장

[기고]합리적 통신소비 이끄는 중저가 단말 시장

2014년 10월 이용자 차별 해소를 목적으로 시행된 이동통신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에 대해 다양한 의견과 논란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통사의 소모성 보조금 경쟁과 이로 인한 고가 단말과 고가 요금제의 결합 고리를 끊고 소비자의 고착화된 구매 성향을 합리적 소비 패턴으로 변화시켰다는 점은 매우 좋게 평가하고 싶다.

지난날 고가 프리미엄 단말이 주도하던 스마트폰 시장이 중저가 중심으로 전환된 것과 더불어 외산폰의 무덤이라고 불리던 국내 단말 시장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단말이 유통되는 등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통법 시행 이전의 이통 시장은 매우 비정상이었다. 새벽에 휴대폰을 싸게 사려는 사람으로 400m 이상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는가 하면 정보에 밝은 소수 계층만 보조금 혜택을 받고 정보에 취약한 계층은 불법보조금에 의해 사기를 당하는 피해도 지속 증가했다. 단통법은 비정상의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특단의 조치다.

일부 단말, 특정 시점, 소수 계층에 집중되던 보조금 혜택이 전체 소비자에게 골고루 지급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를 통해 단말 출고가 인하, 중저가 단말 보급 확산, 이용자 차별 해소, 가계통신비 절감 등을 추진한 것이다. 과연 어떠한 변화가 있었을까.

미래창조과학부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단통법 시행 이후 50만원 미만 중저가 단말 판매 비중이 21.5%에서 33.4%로 증가했다. 6만원 이상 고가 요금제 가입자 비중은 33.9%에서 2.4%로 크게 감소했다. 과거 이통사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조건으로 고가 요금제와 고가 스마트폰을 자주 변경하던 소비자가 자신의 이용 패턴 및 구매력 등을 종합 고려, 합리적 소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가계통신비 절감으로 이어졌다.

지난달 26일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동향에 따르면 가계통신비는 2013년 이후 지속 감소세로 나타났다. 2015년 가계통신비는 14만7700원으로 2013년 15만2800원, 2014년 15만400원 대비 계속 낮아지고 있다. 가계통신비를 구성하는 통신서비스 비용과 통신장비 비용은 모두 2014년 대비 낮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단말 유통시장과 구매 행태 변화는 국내 제조사 단말 전략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중저가 단말 라인업을 강화하고 그동안 해외에서만 출시하던 저가 전략 모델을 국내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이통사의 대응은 더욱 흥미롭다. SK텔레콤은 국내 TG앤컴퍼니와 대만 폭스콘이 협력해 제공한 ‘루나(LUNA)’를 통해 중저가 단말 시장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이러한 시도는 사후관리(AS) 차이로 인해 고전하고 있던 외산 중저가 단말의 국내 안착과 단말 시장의 경쟁력 및 활력을 동시에 불어넣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알카텔과 협력한 ‘쏠(SOL)’ 단말도 출시되는 등 중저가 시장이 당분간 대세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그동안 프리미엄 스마트폰이 스마트폰 시장의 폭풍 성장을 이끌었다면 이제는 중저가 스마트폰이 제2의 성장기를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 상태로 접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은 분명 기회가 될 수 있다. 스마트폰 이용 패턴이 어느 정도 적응된 소비자들이 불필요한 기능이 많은 프리미엄 단말보다는 가성비(가격대성능비)가 우수한 단말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합리적 소비문화가 확산된다면 가계통신비 부담 또한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가계동향에 따르면 단통법 시행 이후 가계통신비 부담은 지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렇듯 불필요한 통신 과소비를 줄이고 합리적 통신 소비를 통해 가계통신비 부담을 줄이는 것이 단통법의 제정 취지임을 고려할 때 중저가 단말 시장이 급속히 확대되는 현상은 의미 있는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에는 중저가 단말시장이 소비자의 합리적 통신 소비를 주도하는 모습이다. 이처럼 단통법이 어느 정도 시장에 안착한 상황에서 이제는 단통법 자체에 대한 소모성 논란보다는 중저가 단말과 같이 긍정 사례를 지속 발굴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곽정호 호서대 경영학부 교수 jhkwak@hoseo.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