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SC 프리미어 12 준결승전. 9회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떨린다. ‘땅볼 타구, 3루수 잡아 1루로 송구, 아웃입니다. 9회초의 역전, 도쿄돔의 기적, 대한민국이 결승에 진출합니다.’
프리미어 12 최종 선수명단이 나온다. 윤석민, 양현종, 오승환, 여기에 그런 그런 이유로 39 세이브 임창용, 37 홀드 안지만, 17승 윤성환이 빠진다.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는다. “내가 대표팀 사령탑을 맡고 출전한 대회 중 투수 쪽이 가장 약한 것 같습니다.” 김인식 감독마저 이렇게 말했다.
일본과의 준결승전. 우완 이대은이 3⅓이닝, 좌완 차우찬이 2⅔이닝, 다시 우완 사이드암 심창민, 좌안 정우람이 1⅔이닝, 그리고는 다시 우완 임창민으로 8회까지 일본 타선을 3점으로 막는다. 9회말, 국제경기에 유독 강한 우완 언드핸드 정대현, 한국시리즈 우승 마지막 확정구를 던졌던 좌완 이현승으로 드라마를 마무리 짓는다. 소위 맞춤형 투수, 벌떼 마운드로 일군 3번째 도쿄대첩이다.
하버드대의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와 그 만큼 석학인 동료들이 도시 성장을 연구한 적이 있다. 세 개의 가설을 검토했다. 첫째는 마셜-애로우-로머(Marshall-Arrow-Romer) 가설이라 불렀다. 이 세 명 중 애로우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고, 로머는 단골 후보다. 마셜은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아버지 격이니 더한 수준이다. 이들은 동종 기업이 많이 모이면 산업과 도시는 성장한다고 보았다. 둘째는 포터(Porter) 가설이라 말했다. 하버드경영대학의 그 마이클 포터다. 그는 경쟁이 혁신과 성장의 비결이라 보았다. 이탈리아 금세공 기업들을 보라 한다.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고 혁신한다. 세 번째는 제이콥스(Jacobs) 가설이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이라는 시대를 30년은 앞서간 명저의 저자다. 제인 제이콥스는 다양성(diversity)이 혁신과 도시성장을 만든다고 보았다. 글레지어 교수는 170여개 메트로폴린탄 지역의 20년간 데이터를 모아 분석한다. 그리고 제이콥스 손을 들어 준다. 다양한 산업으로부터 흘러나온 지식과 혁신이 풍부할 때 도시는 성장했다.
1990년대 미국에선 환경규제에 관한 논의가 활발했다. 많은 학자들은 환경규제가 미국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보았다. 섣불리 글로벌 규제에 참여해선 안된다고 했다. 이 주장이 대세로 굳어갈 즈음 마이클 포터는 짧은 기고문을 싣는다. “환경규제로 미국 기업은 더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기술혁신에 더 매진할 거다. 오염이 더 적은 공정을 개발하려 할 것이다. 환경규제는 미국 산업의 경쟁력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 혁신을 통한 이점이 비용을 극복한다는 것이다. 바로 혁신을 통한 상쇄(innovation offset)다.
마이클 포터는 혁신을 통해 성장한다고 했다. 혁신하기 위해선 경쟁이 필요하다. 경쟁이란 과정을 통해 혁신하고, 혁신을 통해 성장한다.
여기서 제인 제이콥스의 다양성과 마이클 포터의 동태적 성장은 맥이 닿는다. 지식의 다양성은 오늘 당장 원가를 줄이는데 도움은 안되지만 내일 새로운 혁신을 하는데 필수적이다. 혁신의 8할은 두 번째 물결부터 온다고 했다. 쓰나미가 그런 것처럼.
전쟁터가 그렇듯 기업이 처한 상황은 변화무쌍하다. 그래서 성공은 복제되지 않는다 했다. 새로운 수요와 경쟁적으로 변한 시장을 헤쳐가기 위해 기업은 유연해야 하고, 유연하기 위해서는 지식과 자원은 다양해야 한다. 어느 가을날, 전설의 야구팀이 그랬던 것처럼.
하버드경영대학의 테오도어 레빗 교수는 그의 고전 ‘마케팅 근시안(Marketing Myopia)’에서 경영 실패의 원인이 경영자의 근시안적 오류에 있다고 했다. 생산단가를 낮추면 이익이 커질꺼야라는 생각, 언젠가 쇠퇴할 산업에 안주하거나 대체기술의 위협을 무시하는 등.
이제 자신에게 물어보자. 우리 기업은 다양한 지식과 의견을 존중하고 있는가. 우리는 다양성 앞에 편협하고 경직되어 있지 않은가. 이 질문에 답변이 궁색하다면 그만큼 성장을 멈출 날이 가까이 있는지 모른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