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전 매장을 둘러본 사람은 날개 없는 선풍기를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수많은 가전제품 사이에서 단연 돋보이는 세련된 디자인의 선풍기는 영국 가전회사가 만들었다. 가격은 50만~80만원에 이른다. 기존의 날개형 선풍기 10대 값이고, 심지어 웬만한 벽걸이 에어컨보다 비싸지만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 바로 디자인의 힘이다.
디자인이 엄청난 부가가치를 낳고 충성도 높은 고객을 창출한다는 것은 이미 애플 아이폰을 비롯한 수많은 사례로 대중에게 인식됐다. 그런데 어찌 보면 디자인과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지는 공공 정책이나 서비스에 디자인이 도입되고, 우리나라가 정부 서비스로는 세계 처음으로 디자인상을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달 독일 뮌헨 BMW 박물관에서 세계 3대 디자인상 가운데 하나이자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iF 디자인 어워드 2016’이 열렸다. 2000여명이 운집한 시상식장에서 연단에 오른 iF 수장 랄프 비그만 회장이 직접 호명한 첫 번째 금상 수상자는 LG, 아우디, HP 같은 단골 수상 기업이 아니었다. 비그만 회장이 신설된 서비스디자인 분야에서 매우 인상 깊은 사례가 나왔다며 발표한 수상자는 바로 대한민국 정부의 ‘정부3.0 국민디자인단’이었다.
올해 수천개 출품작 가운데 불과 75개에만 주어진 iF 금상은 ‘디자인계 오스카상’이란 별칭의 영예로운 상이다. 정부3.0 국민디자인단은 이처럼 권위 있는 상에서 서비스디자인 최초 수상작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정부3.0 국민디자인단이 무엇이라고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았을까. 간단히 말하면 일반 정책이나 서비스에 디자인 개념을 도입하는 새로운 정책·서비스 패러다임이다. 디자이너, 분야별 전문가와 수요자인 국민 등으로 구성된 소규모 디자인단이 현장 관찰과 참여로 기존의 정책이나 서비스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것이 요체다.
쉽게 사례를 들어 본다. 전자정부 세계 1위에 빛나는 한국 정부는 많은 서비스를 PC나 스마트폰으로 제공한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솔직히 사용률이 그리 높지 않다. 왜일까. 실제 수요자가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공급자 입장에서 만들어진 서비스가 많은 탓이다.
지난 2014년에 나온 ‘투어패스’ 역시 이런 문제를 안고 있었다. 투어패스는 관세청·외교부 등 5개 부처, 인천공항 등 2개 공공기관, 항공사가 협업해 구축한 종합 여행정보 모바일 사이트다. 사용 실적은 매우 저조했다.
행정자치부는 한국디자인진흥원과 협업해 서비스 디자이너, 앱 전문가, 여행 경험자 등으로 구성된 국민디자인단 17명을 투어패스 개편에 투입했다.
국민디자인단은 현장실사와 토론을 통해 기존의 서비스는 각 기관이 제공하는 정보를 단순 나열해 호응이 없다는 문제점을 파악했다. 여행자가 입력한 여정 순서에 맞춰 맞춤형 정보 사이트로 다시 디자인할 것을 제안했다. 수요자 입맛에 맞게 개편된 투어패스2.0은 사용자가 급증했다.
2014년에 출범한 국민디자인단은 지난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망라한 총 248개 과제를 본격 선정·수행했다. 1500명에 이르는 다양한 인력이 자발 참여했다. 소통, 토론, 집단지성을 활용해 정책과 서비스를 새롭게 디자인했다.
국민디자인단 iF 디자인상 수상은 민간에 이어 공공 부문에도 디자인이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 잡는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흐름을 전자정부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정부가 선도한다는 것을 입증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김성렬 행정자치부 차관 sunglkim@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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