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저전력으로 생각·학습… 뇌 구조 모방한 AI 칩에 주목

[이슈분석] 저전력으로 생각·학습… 뇌 구조 모방한 AI 칩에 주목

`알파고 열풍`으로 사람 뇌를 모방한 `인공지능 반도체 칩`이 주목받고 있다. 인공지능 칩은 스스로 생각하고 학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 뇌처럼 에너지 효율성도 매우 높은 개념이다. 상용화가 이뤄지면 인공지능 산업의 비약적 발전이 가능하다.

현재 컴퓨터에 쓰이는 중앙처리장치(CPU) 등 연산 프로세서는 과거와 비교해 트랜지스터 집적도와 동작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순차 연산에 특화돼 있어 사람처럼 생각하고 학습할 수 있는 인공적 지능을 구현하면 전력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 이 때문에 최근 기계학습이나 딥러닝을 수행할 수 있는 클라우드 인프라를 구축할 시에는 그래픽처리장치(GPU)를 CPU와 병행 사용하는 것이 일반 추세다. GPU는 연산 코어가 다량 탑재돼 병렬 처리 능력이 높다. 최근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승리한 구글 알파고 연산 시스템도 CPU와 GPU를 동시 사용하는 구조였다.

전문가들은 전력 효율 측면에선 이 역시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설명한다. 학계에 따르면 사람 뇌는 전력 소모량이 20와트(W)에 그친다. 반면 1202개 CPU와 176개 GPU를 쓰는 알파고 시스템은 약 170kW의 전력을 사용한다. 알파고는 이세돌(사람)보다 8500배나 더 많은 자원(전력)을 써서 바둑을 둔 것이다. 인공지능이 더욱 발전하고 널리 보급되려면 비효율을 해결하는 것이 과제다.

사람 뇌 구조를 모방한 반도체 칩 연구개발(R&D)이 한창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사람의 뇌는 100억개 신경세포와 10조개가 넘는 연결구조(시냅스, Synapse)로 이뤄져 있다. 신경세포의 처리 속도는 초당 10회 정도, 약 10Hz에 그친다. GHz 단위로 연산을 처리하는 CPU와 비교 자체가 불가하지만, 방대한 연결 구조 덕에 병렬 처리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말하자면 사람 뇌는 병렬처리에 특화된 저전력 프로세서라는 의미다. 어떤 상황을 인지하고 계산하고 판단 내리는 능력에 최적화돼 있다. 이세돌 9단이 밥 한 끼, 물 한 모금으로 4~5시간씩 앉아 바둑을 둘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IBM은 일찌감치 사람 뇌를 모방한 반도체 칩 개발에 역량을 쏟아 왔다. 2011년 1세대 뇌 구조 모방 반도체 시냅스(SyNAPSE:The Systems of Neuromorphic Adaptive Plastic Sc〃〃alable Electronics) 시제품을 공개했다. 256개 신경세포와 26만개 시냅스를 탑재한 초기 제품으로 곤충 지능을 갖췄다. IBM은 2014년 2세대 뇌 모방 칩인 트루노스(TrueNorth)를 발표한다. 이 제품에는 54억개의 방대한 트랜지스터가 집적돼 있다(인텔 14나노 CPU에 집적된 트랜지스터 숫자는 19억개). 100만개 신경세포와 2억5600만개 시냅스를 탑재했다. 소비 전력은 70mW로 낮다. 따져보면 개구리 지능 수준이다. 지난해 8월에는 다량의 트루노스를 연결해 4800만개 신경세포와 123억개의 시냅스를 구현했다. 지능이 쥐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IBM은 설명했다. 그러나 여러 개 칩 보드를 하나로 합친 구조여서 부피가 매우 크다. 이보다 많은 신경세포와 시냅스를 작게 집적하는 것이 앞으로의 개발 방향이다.

IBM 외에도 각국 대학이 뇌 구조를 모방한 전용 반도체 칩 설계에 한창이다. 중국 칭화대는 IBM 트루노스와 거의 동일한 구조의 뇌 모방 칩 `톈즈(Tianji)`를 개발하고 있음을 지난해 12월에 열린 국제전자소자회의(IEDM:International Electron Device Meeting) 2015에서 밝혔다. 칭화대 연구진은 “중국에서 사람 뇌와 동일한 구조의 칩을 연구개발(R&D)하는 곳은 칭화대가 유일하다”며 “정밀, 전기, 전자, 컴퓨터과학, 자동화, 재료, 의료 공학 등 여러 학과가 협력해 연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아직 시제품 공개는 하지 않았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는 지난 1월 말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반도체회로학술회의(ISSCC) 2016에서 모바일 GPU보다 10배 성능을 개선한 신경망 칩 아이리스(Eyeriss)를 발표했다. 168개 코어와 각 코어마다 메모리를 배치해 데이터 병목 현상과 에너지 소비를 줄인 것이 특징이다. 각 코어가 신경세포처럼 작동한다. 인터넷에 연결돼 있지 않아도 기기 내에서 학습이 가능하다. MIT는 학회에서 클라우드 인프라 도움 없이 아이리스만을 활용한 단말에서 이미지 인식 등 딥러닝을 수행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한국 KAIST 유회준 교수팀은 수년째 인공지능에 특화된 전용칩을 내놓고 있다. IBM 트루노스가 인공지능에 맞춰진 `범용` 칩이라면 KAIST는 로봇, 자동차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UX, UI에 최적화된 웨어러블 전용 칩 시제품을 공개해 학계와 산업계로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