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회준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팀은 지난 1월 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국제반도체회로학술회의(ISSCC) 2016에서 학계와 산업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유 교수팀은 이번 학회에 학습과 인식 기능을 구현하는 세 가지 인공지능 칩 연구 결과물을 논문으로 공개했다. 유 교수는 2000년대 중반부터 사람의 뇌와 유사한 형태의 반도체 칩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연구를 지속해 왔다. 그가 연구 결과물을 내놓을 때면 세계적 반도체 기업의 연구진이 `강의를 해 달라` `함께 고민해 보자`며 러브콜을 보냈다. 유 교수는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 인공지능 반도체 기술 학계와 업계에선 이미 선구자로 각인돼 있다.
-ISSCC 2016에 발표한 연구 논문은 무엇인가.
▲크게 세 방향이다. 구글 알파고 시스템처럼 트리 서치에 최적화된 인공지능 칩이 있다. 로봇에 적용할 수 있는 칩(논문 제목:A 0.55V 1.1mW Artificial-Intelligence Processor with PVT Compensation for Micro Robots)이다. 또 하나는 딥 뉴럴 네트워크 기법을 사용한 자동차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용 칩(논문 제목:A 502GOPS and 0.984mW Dual-Mode ADAS SoC with RNN-FIS Engine for Intention Prediction in Automotive Black-Box System)이다. 충돌 위험, 이런 것들을 계산하고 예측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웨어러블용 인공지능 칩(논문 제목:A 126.1mW Real-Time Natural UI/UX Processor with Embedded Deep-Learning Core for Low-Power Smart Glasses)이다. 증강 현실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 형태의 글라스 디바이스에 이 칩을 적용하면 가상현실(VR)처럼 인터넷 웹 브라우저를 띄우고 키보드를 불러와 글자도 입력할 수 있다. 과거 삼성 사장단 회의에서 강연하며 “인공지능이 몇 년 안에 굉장한 이슈가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 알파고 대국으로 한국은 온통 인공지능 얘기로 도배가 됐다. KAIST는 일찌감치 관련 기술을 개발해왔고 성과물도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로봇용 인공지능 칩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
▲알파고에 쓰인 트리서치만을 전문으로 하는 엔진이 들어가 있다. 강화학습 기능도 들어갔다. 굉장히 많은 경우의 수를 분석에 최적을 찾아낸다. 축구 로봇에 적용하면 상대방 골대로 공이 가장 잘 들어갈 것 같은 경로를 찾아낼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학회에서 발표했다. 기존 중앙처리장치(CPU)는 이런 것이 불가능하다. 속도가 느리고 전력도 많이 먹는다.
우리가 만든 칩에는 총 32개 코어가 들어가 있다. 코어는 클러스터로 묶인다. 각 요소의 동작 속도는 가변적이다. 저전력 설계다. 물체인식, 경로 찾기(패스 파인딩)에 적합한 알고리즘을 넣었다. 로봇청소기 등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전력소모량은 151㎽다. 그래픽처리장치(GPU)가 3W 전력을 쓴다. 굉장히 작은 숫자다. 클라우드로 구현하는 것을 칩 단에서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차량용 ADAS 전용 칩은.
▲비전 분야에서 예측에 최적화된 칩이다. 자동차나 보행자 위치를 기억하고 있다가 이후 상황과 비교해서 위험도를 8단계로 나눠 보여 준다. `저 사람이 부딪힐 것 같다, 아니다`를 예측해서 알려주는 것이다. 일반적 ADAS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주변 물체와 차량 사이 거리를 64단계로 나눠서 보여 줄 수도 있다. 이런 걸 구현하는 세미 글로벌 매칭(SGM)이라는 알고리즘이 있는데 너무 복잡해서 칩에 넣을 엄두를 못 냈다. 우리는 이걸 저전력 칩으로 구현했다. 보행자 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딥 뉴럴 네트워크를 사용하고 사람 노하우를 가미하기 위해 별도 로직도 넣었다.
굉장히 적은 전력을 먹는다. 차가 움직일 때는 1와트(W)에 초당 862기가오퍼레이션(1초에 10의 9승 계산할 수 있다는 의미)이 가능하다. 최대 전력 소모량은 582㎽다.
-HMD에 탑재되는 웨어러블 인공지능칩도 궁금하다.
▲ 제스처와 음성 인식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딥 러닝을 가능토록 한 칩이다. 웨어러블 기기가 스스로 학습한다는 것이다. 클라우드 인프라가 필요 없다. 칩 단에서 스스로 학습이 가능하도록 한 연구 결과물을 내놓은 곳은 KAIST가 세계 최초다. HMD를 예로 들면 내 안경, 당신 안경의 학습 정도나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이건 테라 오퍼레이션이다. 1W, 1초당 10의 12승을 계산한다.
- 인공지능을 클라우드가 아닌 칩으로 구현하는 것이 의미가 있나.
▲인공지능 진영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구글이나 IBM, 페이스북 같은 곳은 클라우드 인프라로 인공지능을 구현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네트워크를 통해 분산된 시스템을 사용하겠단 의미다. 다른 한 쪽은 인공지능을 단말기 자체에 넣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후자를 선호한다. 사람과 직접 접촉하는 마지막단(엣지단) 컴퓨팅에 더 많은 역량을 쏟아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은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클라우드 인프라로 미국, 중국을 따라갈 수 없다. 소프트웨어 역시 마찬가지다. 이 구도를 깨지 못하면 한국은 늘 미국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제프리 힌튼(구글이 영입), 얀 러쿤(페이스북이 영입) 같은 인공지능 분야 권위자도 반도체로 이를 구현해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연구 결과물은 어떻게 활용할 계획인가.
▲연구를 계속해서 완성도를 계속 높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인공지능 분야 연구를 오래했다. 연구 결과물 보고 인텔, 퀄컴,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 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회사에서 연락을 많이 받았다. IBM에도 여러번 세미나를 했다. 퀄컴도 마찬가지고.
우리 칩 구조와 비슷한 걸 따라하려 한다. MIT가 이번에 인공지능 칩 관련 논문을 냈는데 나한테 먼저 연락 와서 (KAIST 연구서 영감을 얻었으니) 논문을 내도 되느냐, 이런 걸 물어봤다. 작년까지만 해도 인공지능 칩 분야 연구가 많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많이 따라오는 중이다. 일본에선 르네사스, 히타치 같은 기업이 나서고 있다. 아주 최근에 국내 큰 기업이 뭐 좀 같이 해보자고 연락이 왔다. 해외 업체는 그냥 가르쳐달라 이거다. 나중에 학생도 보내달라 하는데, 국익에는 큰 도움이 안 된다. 알파고 덕분에 인공지능 분야가 뜨는 것은 반갑다. 그러나 우리가 미국 모델을 그대로 따라가면 이길 수 없다. 또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있다면 방향을 잘 잡아야 할 것이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