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은 둘 이상 사업자가 상품이나 용역의 가격, 판매 조건, 생산량, 거래 지역 등을 합의 결정함으로써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다. 경쟁을 직접 제한하는 `시장경제 제1의 적`이기 때문에 공정거래법은 이를 금지하고 엄중히 제재한다.
담합은 대부분 은밀한 공모로 이뤄진다. 제재 수준이 강화되자 최근 합의서 등의 문서를 남기지 않는 등 수법이 교묘해지고, 이에 따라 증거 자료 확보가 어렵다. 40개 이상 국가들은 자진신고 감면제도(리니언시)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는 담합을 적발하고 억제하는 데 효과 높은 수단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6년 공정거래법에 이 제도를 도입했다. 수차례 개정을 거쳐 현재는 사업자가 담합한 사실을 공정위에 자진신고하고 증거를 제공하는 등 조사에 협조하면 신고 순위에 따라 시정 조치와 과징금을 전부 면제하거나 50% 감경해 준다.
그러나 공정위가 사업자 자진신고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지적이 종종 제기된다. 공정위가 독자 조사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도 필요하지만 담합 적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자진신고 제도를 적극 활용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달리 강제조사권이 없음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미국은 법무부가 담합을 규제하고 있다. 영장을 통한 압수·수색은 물론 감청까지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하지만 은밀한 속성상 담합 적발은 쉽지 않다. 실제 담합 제재 건수는 약 90%가 자진신고에 의한 것이다.
담합을 주도한 사업자가 자진신고로 면죄부를 받거나 동일한 사업자가 여러 차례 담합을 했음에도 그때마다 자진신고에 따른 혜택을 받는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돼 왔다. 2011년 시행령을 개정, 담합을 반복한 행위자에게는 감면 혜택을 제한했다. 지난 3일에는 공정거래법을 개정, 담합 반복 행위자에게는 5년 동안 감면 혜택이 부여되지 않게 됐다. 종래의 고시가 정한 내용 가운데 일부를 법률에 직접 규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법률 개정 타당성에는 의문이 있다.
첫째 한 번 담합이 적발된 사업자는 다시 담합을 할 때 더욱 은밀하고 교묘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우 당국이 자진신고 제도를 활용하지 않고 증거를 직접 수집해 제재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진다.
둘째 자진신고 제도는 오히려 담합이 반복된 경우 더 효과를 낼 수 있다. 미국 존홉킨스대 경제학자 조지프 해링턴의 분석에 따르면 개별 사업자는 담합에 계속 참여해 얻는 이익과 담합 탈퇴로 인한 이익을 상호 비교해 후자가 더 크면 담합에서 나오게 된다. 자진신고 제도는 담합에 가담한 사업자 가운데 일부로 하여금 다른 사업자를 배신하고 당국에 먼저 자진 신고함으로써 감면 혜택을 받도록 해 상호간 불신을 조장하고 내부로 담합을 붕괴하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담합 반복 행위자 가운데 과거에 감면 혜택을 받은 경험이 있는 사업자는 그렇지 않은 사업자에 비해 경쟁 사업자에 대한 불신이 더욱 크기 때문에 자진 신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당국이 자진 신고한 사업자로부터 증거를 충분히 확보한다면 자진 신고를 늦게 하거나 아예 하지 않은 사업자를 제재할 수 있게 되고, 담합 적발·억제 효과는 증대되는 것이다. 그런데 개정법에 따라 감면 혜택을 제한하면 담합 적발·억제 효과는 감소하게 되는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
셋째 감면 혜택을 받은 이후 5년 동안 다시 혜택을 받는 것이 불가능해지게 되면 다른 경쟁 사업자를 배신하고 자진 신고할 유인이 사라진다. 이에 따라 사업자 간 결속력이 강화돼 담합이 장기간 유지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전미경제연구소 경제학자 놀런 밀러는 미국 법무부 사례를 실증 연구해 자진신고 제도가 도입된 직후에는 적발 효과가 증대돼 담합 사건 수가 증가하지만 장기로는 담합 형성 자체가 억제돼 사건이 감소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1995년 자진신고 제도가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게 개선된 이후 새로운 담합 형성이 다소 감소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진신고는 과징금을 감면하는 결과를 가져오지만 동시에 담합을 내부로 붕괴시키고 담합 참여자 간의 신뢰를 약화시켜 담합 형성의 잠재성 억제에 기여할 수 있다. 이번 법률 개정은 과징금 감면 결과에만 주목한 나머지 담합 붕괴, 적발·억제 효과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개정된 법률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앞에서 언급한 문제점이 현실화된다면 보완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손계준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kjson@jipyo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