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14> 창조적 파괴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14> 창조적 파괴

와비 파커(Warby Parker). 이름만으론 어떤 기업인지 알 길이 없다. 창업자는 세련되고 그리 심각하지 않으면서 뭔가 혁신이 되는 느낌을 원했다. 미국 소설가 잭 케루악의 캐릭터 와비 페퍼와 잭 파커에서 따온다. 미사여구를 뺀다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출신 네 명이 창업한 것은 온라인 안경점이다.아이디어는 간단하다. 홈페이지에 들러 취향대로 안경 다섯 개를 고른다. 이 제품이 배송되면 며칠 동안 써 본다. 그 가운데 원하는 것을 주문하고, 견본은 반송한다. 얼마 후 주문한 새 안경을 받는다. 홈트라이온(home try-on) 서비스. 무료로 샘플을 배송해 줘서 직접 경험하게 한다. 가격은 하나에 95달러(약 11만원) 남짓부터다. 2010년 2월 2500달러 종잣돈으로 시작한 지 5년째 되던 2015년 4월 기업 가치는 12조원을 넘어 기업 가치가 10억달러를 넘는 스타트업인 유니콘 반열에 오른다.

“룩소티카 아성에 도전한 기업.” CNBC는 와비 파커를 이렇게 소개한다.

이제 또 하나 살펴볼 기업이 있다.

뉴욕증시에서 룩스(LUX)로 불리는 기업 룩소티카(Luxottica). 이탈리아 밀라노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안경 콩글로머레이트. 하지만 이 정도 설명으론 부족하다. 디자인, 제조, 유통, 소매까지 이른바 수직통합 표본 격이다. 이름만 말해 보라. 샤넬, 프라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버버리, 베르사체, 돌체 앤드 가바나, 랄프 로렌…. 웬만한 명품 선글라스는 여기서 디자인하고 생산한다. 레이밴, 퍼솔, 오클리 같은 브랜드는 아예 사들였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멋진 선글라스를 기억하는가.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제임스 딘, 영화 `탑건`에서 톰 크루즈가 썼다면 어떤가. 이들이 애용하던 브랜드가 바로 라이방이다. 그뿐일까. 소매점을 살펴보자. 미국 최대 안경체인 렌즈크래프터즈, 펄비전, 시어즈, 타깃의 안경 코너는 물론 북미에만 1500여개 매장을 둔 선글라스 헛도 자회사다. 게다가 아이메드라는 안과보험회사와 glasses.com이란 도메인조차 이들 소유다.

100달러 미만 비용에 가치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와비 파커는 단숨에 혁신기업의 대명사가 된다. 하지만 정작 룩소티카도 한때 혁신기업이었다. 아니, 하나의 산업을 완전히 새로운 산업으로 변모시킨다. 레오나르도 델 베키오가 1967년에 설립한 이 기업은 수많은 인수와 라이선스 계약을 거치면서 돋보기산업을 패션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안경이란 단어마저 `glasses`에서 `eyewear`가 된다.

수직 계열화는 너무도 잘 기획됐고, 멋지게 실행됐다. 하지만 지나치게 독점 시장을 만들었다. 언젠가부터 룩소티카는 이 매력에 도취됐을지도 모르겠다. 룩소티카는 온라인 시장의 가능성을 눈치 채지 못했을까. 아니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두려움 탓에 주저한 것일까.

하나의 혁신이 멋지게 성공했지만 새로운 혁신에 발목이 잡힌다. 재임자 딜레마(incumbent`s dilemma)에 빠진다. 새로운 방식이 자신의 시장, 기존의 이익을 잠식할까 두려워한다.

이노사이트(Innosigh) 파트너인 스콧 앤서니는 흥미로운 사례를 든다. “애플 아이패드가 나왔을 때 한 애널리스트가 애플 노트북 시장을 갉아먹을 거라고 경고했지요. 어쨌든 아이패드를 판매하고 시간이 꽤 흐른 후에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있던 팀 쿡이 어떻게 됐는지 확인했죠. 결과적으로 조금 그렇기는 했지만 아이패드가 15만개나 팔렸으니 문제될 게 없었어요. 거기다 애플 제품을 안 써 본 소비자에게 애플이 어떤 거란 걸 알게 해 줬잖아요. 쿡이 그러더군요. 이런 걸 자기 살 갉아먹기라고 하면 언제든 좋다고.”

우리가 쿡 COO나 룩소티카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앞으로 이런 때가 온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결국 시장이 있다면 누군가는 차지하려 하지 않을까요. 당신이 안 한다면 경쟁자가 하겠죠.”

새로운 혁신이 과거 혁신을 대체하는 과정을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고 불렀다. 역설이게도 이 창조적 파괴 과정을 피해야만 기업은 생존할 수 있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