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관절염 치료제를 처방할 땐 대부분 소화제를 함께 준다. 관절염 치료제 부작용인 궤양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관절염 치료제를 개발할 때 궤양을 막는 성분을 함께 넣으면 어떨까. 어찌 보면 단순하지만 간편한 생각일 수 있다.
적어도 제약 산업에서는 이러한 `간단`이 통하지 않는다. 수많은 약 가운데 함께 처방되는 사례는 정렬하기 어렵다. 설령 찾았다 해도 둘을 합친 복합제를 개발했을 때 어떤 부작용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주목받는 게 `빅데이터`다. 수많은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는 빅데이터는 전 산업군에서 활용된다. 보수 영역인 제약 산업에도 빅데이터가 조금씩 활용된다.
관절염 치료제와 소화제 복합제도 빅데이터로 시작됐다. 국내 대학병원과 제약사가 손잡고 진료, 처방 등 다양한 의료 데이터를 분석했다. 자주 함께 처방되는 약물 데이터를 추출, 부작용 사례까지 분석했다.
신약 개발 과정에도 빅데이터는 활용될 여지가 크다. 약을 개발하기 전에 수요를 파악하고, 임상 과정에서 쏟아지는 데이터로 성공률을 높인다. 상용화된 이후에도 꾸준히 처방 데이터를 분석, 새로운 적응증을 미리 발견할 수 있다.
통상 신약 개발에는 10년 이상 시간이 소요된다. 투입되는 금액도 1조원에 이른다. 오랜 시간을 투자했다 하더라도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중간에 버려지는 기술과 약이 엄청나다. 빅데이터는 이 과정도 줄여 준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의료 데이터 유통이 활발한지 오래됐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제약 산업의 빅데이터 이용에 제한이 많다. 개인 생체 정보를 포함한 의료 데이터는 굉장히 민감하다. 정부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환자의 동의 없이 의료정보 활용을 금지한다. 최근 의료 데이터를 외부에도 보관하도록 허용했지만 방법론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다. 외부에 보관한다 해도 활용은 불가능하다. 선진국들의 이용 사례와는 크게 다른 양상이다. 제약·바이오 산업은 창조경제의 핵심 모델이다. 빅데이터를 접목해 얻을 엄청난 효과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
-
정용철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