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인터뷰 오정택ㆍ이강우②] ‘히스토리 보이즈’가 넘겨주는 메시지

출처: 이승훈 기자
출처: 이승훈 기자

지난 2014년도 ‘히스토리 보이즈’ 재연에서 자기 주장이 강하고 영리하지만 가끔 선생님들과 반항적으로 논쟁하는 락우드 역으로 분했던 오정택이 이번 공연에서는 공부에 큰 흥미는 없지만 입시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열정적인 스포츠 소년 럿지 역을 맡았다. 캐릭터의 성격이 다르니 말투, 행동 하나하나까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처음에 럿지 역을 맡게 됐을 땐 걱정이 많았어요. (임)준식이처럼 우락부락하거나 몸이 크지도 않아서 고민을 하면서 겉을 많이 꾸미려고 했었어요. 그러다 ‘얘는 순수한 앤데 왜 내가 겉을 꾸몄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 차치하고 이 친구가 진짜 원하고 하고 싶은 게 뭔지, 왜 대학에 붙고 나서 그런 긴 이야기를 했고 나중에 왜 그 직업을 갖는지에 집중했죠. 럿지는 생각보다 더 순수해요. 락우드처럼 세상을 살고 있지만 저는 럿지이고 싶어요. 제가 느끼기에 여기 나오는 모든 배역의 지식 배틀은 자격지심에서 시작된 것 같아요. 항상 사람들이 그렇잖아요. 껍데기가 중요하게 생각되니까. 락우드는 그걸 화려하게 해내는 친구고, 럿지는 하고 싶은데 뜻대로 잘 안되죠. 근데 저는 순수한 친구라고 생각돼서 좋더라고요.” (오정택)



“럿지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인물에 접근할 때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다들 비슷한 것 같아요. 이미 관객들과 만났던 공연이기 때문에 작품에 씌여진 외형적인 이미지가 있어요. 그래서 아예 백지인 상태보다 한 천만 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정택이랑도 이 부분에 대해 많이 얘기했었는데 겉으로 뭔갈 만들려고 하지 말자고 했어요.“ (이강우)

“글로 써진 시나리오에 사람들이 그림을 그려놓으면, 그 후에 공연하는 사람들은 훨씬 어렵고 부담되는 게 사실이에요. 그래도 그 걱정들이 긍정적 결과로 온 것 같아요. 처음엔 스트레스도 받았지만, 결국엔 저희에게 기본이 되는 시나리오에 충실하면 된다는 결론을 가졌죠. 그런 고통이 지나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남이 했던 걸 괜히 어설프게 따라 해봤자 절대 똑같이 될 순 없으니까요.” (오정택)

출처: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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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셰필드에 사는 8명의 학생들은 옥스퍼드와 캠브릿지를 목표로 매 순간 열을 올린다. 분명 낯선 곳의 낯선 환경이건만 무대 위 풍경은 어딘지 익숙하다. 우리가 고3 때 그랬듯이 이들에게도 시험은 스트레스고, 인생의 전부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말씀을 꾹꾹 눌러 적으며 열심히 흡수한다. 그들이 과거에 가졌던 꿈, 과정, 그리고 현재를 연기하는 두 배우는 언제부터 무대를 꿈꾸게 됐을까.

“원래 꿈은 스포츠 마케팅 쪽에서 일하는 거였어요. 스포츠를 워낙 좋아하는데다가 아버지께서 체육 선생님이셔서 그 영향도 있었죠. 그러다 재수할 때 우연한 계기로 꿈이 바뀌었어요. 제 동생이 가야금을 하는데, 하루는 동생 공연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연기 쪽에 계시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어요. 근데 그분이 저보고 연기를 해보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 제안도 뜬금없긴 했지만, 그 날 저는 더 뜬금없게도 그 일을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일인데 말이죠. 그리고 그렇게 공부만 시키시던 부모님도 정말 쿨하게 허락해 주셨어요.” (이강우)

“저도 자발적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고등학교 때 CA 부서를 정해야 하는데, 들어가고 싶던 축구부나 배드민턴, 볼링은 이미 꽉 찼고 가위바위보에서 져서 연극반에 들어가게 됐어요. 근데 들어가 보니 선배들이 다 양아치였어요. (웃음) 너무 무서웠죠. 맨 처음 맡았던 역할이 ‘죽은 시인의 사회’의 교장 선생님이었어요. 하라고 하니까 무서워서 했어요. 그러다 2학년 때 주인공을 맡게 됐어요. 전교생을 다 모아놓고 구민회관에서 했는데 객석 수만 해도 천 석이 넘었으니까 정말 큰 곳에서 한거죠. 거기서 천 명의 박수소리를 듣는데 보통 전율이 아니었어요. 선생님께서 ‘(연기) 해봐라’ 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시작하게 된 거예요.” (오정택)

“그러고 보면 신기해요. 인생이 변하는 건 순간인 것 같아요.” (이강우)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서 노크는 종종 생략된 채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게 맞을지도 몰라요. 헥터 선생님 말씀처럼.” (오정택)

출처: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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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 보이즈’의 학생들은 헥터와 어윈의 수업으로부터 이성과 감성의 빈자리를 채워줄 어떤 것들을 받는다. 하지만 꾸역꾸역 억지로 주입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기성세대의 관점 밖에서 그들이 넘겨준 것들을 느끼는 자유로운 존재로 표현된다. ‘받아서 느껴보고 넘겨주라’는 헥터의 메시지는 작품 전체를 감싼다. 느낄 수 있게 받아보는 것, 그리고 그것을 느낀 후 넘겨주는 것의 크고 작음은 중요치 않다. 의미는 그 행위 자체에 있다.

“우리가 부모님께 받고 있는 모든 게 넘겨줌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일부러 어떤 걸 특정해서 넘겨줘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마음 쓰면서 자연스럽게 넘겨주면, 그 사람들은 또 그 다음 사람들에게 더 좋은 걸 넘겨주는 거죠. 그래서 제가 요즘 가장 노력하는 것 중 하나가 누군가를 사랑하려고 하는 거예요. 사랑하는 척하고 싶지 않아요. 진짜 마음줄 수 있을 때 마음 주고, 받는 상대방이 그 마음을 흠뻑 느낄 수 있게 하는 거죠. 사소한 노력들이지만, 최대한 표현하려고 해요.” (이강우)

“저는 진짜 잘 느껴보고 싶어요. 언제부턴가 예전에 있었던 일이 잘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그게 기억력이 감퇴된 게 아니라 그 순간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거죠. 내가 슬프면 진짜 슬퍼하고 기쁘면 정말 기뻐하면서 그 순간의 감정들이 몸에 쌓여야 하는데, 그런 기억들이 아예 없어진 것 같아요. 넘겨줘야 할 것들을 생각하기 이전에 일단 스스로 흠뻑 느꼈으면 해요. 앞에서 럿지처럼 살고 싶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대학 입학이 결정되고 나서 헥터 선생님에게 팻샵보이즈의 ‘It's a sin'을 퀴즈로 내요. 가사가 담고 있는 내용도 의미가 있지만, 럿지가 처음으로 무언가를 주도했다는 것이 더 눈에 들어왔어요. 그 전에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친구들에게 ’나는 항상 너희들을 쫓아가기 바빴지만 이번에는 내 식으로 해 볼게‘ 이런 생각으로 시작한 건데 친구들이 같이 따라 하는 거죠. 대학에 들어가는 것보다 이 변화가 럿지에겐 더 중요할지도 몰라요.” (오정택)

진보연 기자 jinb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