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노키아는 난공불락의 세계 최대 휴대폰 제조업체였다. 1865년 종이를 만드는 제지 회사에서 출발해 여러 번 변신하면서 전자회사로 탈바꿈, 휴대폰과 통신장비를 제조 판매하며 세계 휴대폰 시장을 호령했다. 하지만 노키아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모바일 중심으로 흘러가는 휴대폰 시장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휴대폰 시장 왕좌를 내줘야했다.
지나친 자기 기술 확신과 시장 점유율 자만, 스마트폰 기술 혁신을 이루고서도 상용화 시키지 못한 판단 오류 등 여러 이유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비틀거렸다. 급기야 노키아는 2013년 9월 휴대폰 사업을 마이크로소프트(MS)에 매각했다.
휴대폰 사업 매각 후 노키아는 정체성을 다시 수립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이의 선두에 라지브 수리 노키아 최고경영자(CEO)가 있다. 인도 태생인 그는 네트워크 부문 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해 5월 CEO에 선임, 강력한 리더십으로 노키아를 다시 `정상 고지`로 이끌고 있다. 노키아 부활의 특명을 받은 그가 꺼낸 카드는 선택과 집중이다. 먼저 슬림화. 전체 직원 36%인 4만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디지털지도 서비스 `히어(Here)`도 매각했다. 대신 통신특허와 통신관련 센서 개발에 적극 투자했다. 2013년에는 지멘스와 합작해 세웠던 통신장비 개발회사 `노키아지멘스네트웍스`의 지멘스 지분 50%를 모두 사들였다. 지난해 4월에는 프랑스 통신업체 알카텔루슨트를 인수하는 결단도 내렸다. 두 회사가 합해지면서 스웨덴 에릭슨, 중국 화웨이가 보유한 점유율을 넘어섰다. 세계 최대 휴대폰 업체였던 노키아가 통신 장비 사업으로 완전히 전환했음을 의미한다.
노키아는 최근 사물인터넷(IoT)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라지브 수리 CEO는 올 2월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에서 향후 IoT 분야에 3억5000만유로(약 43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달에는 프랑스 e헬스케어 업체 위딩스(Withings)를 1억7000만유로(약 2206억원)에 인수했다. 이번 인수는 매년 31% 성장을 기록하는 IoT 기반 디지털 헬스케어 마켓 공략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위딩스는 무선으로 앱과 서비스에 연결할 수 있는 체중계·체온계·혈압측정기·침실 조명 등을 제품 라인업으로 갖추고 있다.
사용자 프로파일 정보를 토대로 각종 장치가 측정한 건강 정보를 헬스메이트(Health Mate)라는 대시보드로 보여준다. 체중계, 혈압계, 스마트 워치, 알람 등 새로운 장치를 추가하면 운동 기록, 수면 패턴, 체중 등 관련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그래프로 보여준다. 노키아는 위딩스를 앞세워 웨어러블 등 다양한 헬스케어 디바이스 연구개발에 집중한다. 또 5세대(G) 이동통신과 클라우드 등 차세대 기술 역량도 강화해 시장점유율을 높인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글로벌 이동통신사와 손을 잡고 5G 연구개발에 대규모 자금도 투입하고 있다. 차세대 성장산업으로 떠오른 가상현실(VR)에도 손을 뻗쳤다. 대당 가격이 6만달러인 전문가용 360도 카메라 `오조(OZO)`를 출시했다. 일반 360도 카메라는 녹화 후 영상을 확인하기 위해 별개 프로그램을 이용해 영상을 이어붙이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러나 오조는 촬영 즉시 영상을 별도 편집 없이 일반 모니터나 VR헤드셋에서 바로 볼 수 있다. 최근 미국 영화사 월트디즈니와 오조 공급계약을 체결, 판매를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노키아의 자신감은 높은 기술력에 바탕하고 있다. 기존 노키아 기술력에 알카텔루슨트 인수로 1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연구·개발 기관 벨연구소를 확보한 만큼 미래 기술 분야에서 다시 한번 `노키아 천하`를 이룰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노키아 선전은 `숫자`로도 나타난다. 노키아는 2012년 영업이익이 1억2000만유로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3년에는 휴대폰 매각으로 매출은 127억유로로 반토막 났지만 영업이익은 14억유로로 크게 뛰어올랐다. 2014년에는 매출 117억, 영업이익은 16억 유로를 기록했다. 그리고 지난해 매출 125억유로와 영업이익 20억유로를 기록하며 전성기(2007년)에 기록한 15.6% 영업이익률을 회복했다. 한때 최고 기업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던 노키아가 과감한 변신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