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전소에서 나오는 온배수를 활용해 물고기를 양식하고 꽃과 과일을 재배하는 사업이 각광받고 있다. 돈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온수를 농어업에 재활용하면서 에너지 절감과 농가소득 증대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그동안 발전소 온배수는 바다로 버려지는 물일 뿐이었다. 지방자치단체 인허가와 시설 투자로 인한 부담은 컸지만 관련 사업으로 얻을 부가 수익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4년 온배수열이 신재생에너지에 포함되면서 발전사가 신재생 의무 감축 수단으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해양수산부 등 범 부처 차원의 지원까지 더해지면서 최근 에너지신산업으로 급부상했다. 제도 변화가 잠자고 있는 유망 산업을 깨운 사례다.
◇수급 안정·형평성 중심 제도 “이제 그만”
에너지 시장은 기대와 고민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전기자동차, 에너지저장장치(ESS), 마이크로그리드 등으로 대표되는 에너지신산업이 급부상하면서 새로운 기술 융합과 비즈니스 모델 등장에 기대가 몰렸다. 반면에 제도 손질이나 시장 환경을 먼저 완비해야 하는 정부의 고민은 깊어졌다.
에너지는 전통적으로 제도 기반 산업이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국가에도 통용되는 특징이다. 에너지가 지닌 공공재 특성에 따라 수요와 공급, 가격 부문에서 많건 적건 언제나 정부 관리가 필요하다. 나라에 따라 에너지 비축에 중점을 두는 곳이 있는가 하면 수출 원동력이나 체제 유지, 세력 과시용으로 에너지를 활용하는 곳과 같은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비축에 더 비중을 뒀다. 석유와 가스 등 1차 에너지 대부분을 해외에서 들여와야 하는 자원 빈국의 여건이 고려된 정책이다. 특히 1970년대 세계를 강타한 1·2차 오일쇼크는 자원 수급과 비축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만든 사건으로, 에너지 문제를 국가 안보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다.
수급과 함께 중요하게 고려된 또 다른 가치는 에너지 사용의 형평성이다. 자원 빈국이라는 여건에도 정부는 경제 성장과 소비자물가 안정을 위해 각종 에너지 가격 정책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 전기사업법,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도시가스사업법 등 현재 에너지 법령 체계 모두 수급 안정과 사용 형평성 두 가지 가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체계다.
이 때문에 관련 규제 역시 에너지 안정 공급, 소비자 보호, 사용 시 안전 등에 주요 목적을 둬 왔다. 그만큼 정부와 관련 기관의 영향력도 컸다. 석유 시장은 그나마 경쟁 체제가 도입됐지만 가스는 아직 한국가스공사가 국가 도입 물량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으며, 전력은 한국전력과 한전 계열사가 역할을 도맡고 있다.
에너지신산업이 국가 어젠다가 되면서 이 같은 구조에 변화가 닥쳤다. 지금까지는 수급과 형평성 중심 정책을 펼쳤다면 이제는 효율과 참여, 융합까지 더해야 하는 상황이다. 분야도 늘어났다. 석유, 가스, 전력과 같은 전통 에너지원에서 신재생에너지 및 에너지 효율까지 담아야 한다. 새로운 기술과 사업, 사업자까지 기존의 틀로는 규정하기 어렵게 되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제도가 요구된다.
정부 역시 에너지신산업 등장과 함께 제도 변화와 이에 따른 규제 철폐가 필수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2014년부터 민·관 합동기구인 에너지신산업협의회에서 신산업 분야 규제 개선 과제를 발굴하고 개선 방안을 건의, 이행 실적을 점검·보완해 가고 있다. 발굴된 각종 규제와 고충 요인은 현재 설계되고 있는 에너지신산업특별법에 담길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올해부터 에너지규제개혁협의체를 구성, 전방위 규제 완화에 나섰다.
발전소 온배수열 농어촌 사용도 규제를 개선해 창출된 에너지신산업이다. 신시장 환경 조성에 정책을 집중하면서 지난 1년 반 동안 많은 걸림돌이 제거됐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수요자원, ESS, 에너지자립섬, 태양광 대여, 자동차 등 분야도 많고 대기업에서부터 중소·소규모 사업자까지 참여하다 보니 많은 요구가 쏟아졌다. 때로는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부분이 있어 쉽게 손을 대기도 힘든 상황이다.
◇신기술·산업 활짝 꽃피울 선결과제 `제도 개선`
에너지업계가 제도 변화에 기대를 걸게 된 계기는 지난해 말 정부가 에너지신산업특별법 제정과 전기사업법 개정을 예고하면서다.
새로운 법 출현과 기존의 법 변화로 여러 규제 완화에 기대가 높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법 중복 문제와 혹시 모를 이중규제 우려도 있다.
업계가 현재 에너지 법 체계에서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것은 분야별 사업자와 업무 행태를 정의하면서 제도 유연성이 떨어지는 대목이다. 성문법 체계의 한계이기도 하다. 에너지신산업 분류가 최초 8개에서 12개로 늘었다가 지금은 다시 10개로 준 것이 이를 대변한다. 특별법은 적어도 지금 법과 다르게 앞으로 나올 수 있는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에 수용성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분야별 사례로도 현 에너지 법령에서는 미래의 변화를 담기에 한계가 많다. 대표로 들 수 있는 것이 전력거래소를 활용하는 전력 거래 방법이다. 현 법령상 전력거래소를 경유하지 않고 한전(판매사업자)과 직거래가 가능한 사업군은 도서 지역 및 1㎿ 이하 신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에 한정됐다. 일반 고객은 전력거래소의 전력 시장에서 구매가 불가하다.
관련 규제는 친환경에너지타운 사업 모델에 제약을 준다. 친환경에너지타운은 혐오시설을 신재생에너지 시설로 탈바꿈시켜서 님비(NIMBY) 현상을 해소하고 지역에 새로운 수익 모델을 가져오는 사업으로, 분산 자원의 새로운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대통령이 나서서 친환경에너지타운 확산을 독려하기도 했다.
친환경에너지타운은 지역민이 주요 주주로 참여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이 운영하는 사례가 많아 전문성이 낮고 수익 부문에 세밀한 후속 지원이 필요하다. 안정된 수익보장 방법으로 한전과의 계약 거래 요구가 제기되지만 관련 신재생에너지 시설의 설비 용량이 커서 1㎿ 규제에 발목이 잡힌다.
이는 친환경에너지타운을 넘어 앞으로 국가 차원의 분산자원 육성 정책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지역 내 발전원에서 생산한 전력을 지역 수용가가 소비하려면 무엇보다 한전과 전력거래소 중심의 거래 체계가 아니라 사업자 간 계약거래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이와 관련된 법이 마련돼 있지 않다.
수요관리 시장의 사정도 비슷하다. 절전 행동을 자원으로 인정해 이를 전력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한 점은 획기적이었지만 사업자 활동이 절전 자원이라는 틀에 맞춰지면서 새로운 분야의 진출이 어려운 상황이다. 지능형전력망법에서 수요관리사업자는 스마트그리드 기반 구축 사업, 소규모 발전원 전력 판매 사업 등을 영위할 수 없다. 해외에서는 절전 자원은 물론 발전 자원도 함께 거래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사업자는 오직 절전 자원으로만 거래해야 한다.
전기차에서는 충전 사업을 위한 전력 판매 권한이 문제다. 지능형전력망법에 따라 사업 등록 후 전기사업법에서 판매사업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어렵다. 충전 사업을 등록할 수는 있지만 판매사업 허가를 받지 못해 충전 사업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현 구조에서는 전기차 사용자가 충·방전하려면 운전면허증, 발전사업자면허증, 판매사업자면허증, 송변전면허증 등 4개 면허를 획득해야 한다.
에너지산업특별법과 전기사업법 사이에서의 정부 저울질도 관심사다. 특별법 특성상 기존 법과 연관된 부분이 많아 둘 사이의 조율이 필수인 상황이다. 특정 지역에서 신재생 전력을 이웃에게 바로 팔 수 있는 에너지프로슈머도 특별법이 아닌 기존 법령의 수정으로 해결한 사례다.
업계는 신산업과 관련된 시급한 부문은 특례로 가기를 원하고 있다. 그때그때 대응이 가능하고 시행에 걸리는 시간도 짧아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반대로 특례만으로는 근본 문제 해결이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규제 완화에 소비자 피해가 늘어나는 등 부작용도 고민해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많은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상황에서 규제 개선을 반기는 곳도 있겠지만 반대로 인해 또 다른 걸림돌이 생기는 곳도 있을 것”이라면서 “에너지 분야도 가능한 한 많은 의견을 수렴해 특정 업종을 위한 것보단 전체로 합리적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추진 중인 전력분야 규제 개선 현황
자료: 산업통상자원부
발전·판매 겸업 일부 허용으로 가능해진 에너지프로슈머
자료: 산업통상자원부
올해 등장 예정인 분산자원시장 개요
자료: 산업통상자원부
조정형 에너지 전문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