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돈으로 17조원에 달하는 메가 빅딜이 영국 통신시장에서 좌절됐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홍콩 기업 CK허치슨이 신청한 영국 이동통신업체 `O2`와 `쓰리`(Three) 합병 승인을 거부했다고 BBC 등 외신이 1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아시아 최고 갑부인 리카싱이 이끄는 CK허치슨은 영국 이통사 `쓰리(Three)`를 보유, 영국 2위인 O2를 145억달러(약 17조원)에 사들여 합병할 계획이었다. 합병하면 새 이통사는 영국 최대 이통사가 된다.
EU 경쟁 부문 집행위원인 마그레테 베스타거는 “이번 인수·합병(M&A)은 소비자 선택 기회를 줄이고 통신료를 높일 수 있어 매우 우려된다”며 “합병이 경쟁 약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EU 통제 목적”이라며 합병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허치슨은 5년간 요금을 동결하고 50억파운드를 영국에 투자하겠다고 밝혔지만 EU 경쟁당국의 합병 부작용 우려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두 회사가 합병하게 되면 영국 이통사는 보다폰과 EE(Everything Everywhere)를 포함해 3개사만 남게 된다.
컨설팅업체 오범(Ovum)의 매튜 휴렛 애널리스트는 “통신사가 4개에서 3개로 줄어들면 통신비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대형 합병에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또 합병회사가 독점력을 가지면서 5세대(G) 이동통신 투자를 기피할 것이라는 우려도 승인 거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CK허치슨은 지난해 3월 스페인 텔레포니카와 O2 매각계약을 체결했다. 두 회사를 합치면 가입자는 3300만명, 시장 점유율은 40%를 차지한다. 인수가 145억달러는 리카싱이 이끄는 청쿵그룹의 해외업체 인수 규모 중 가장 큰 금액이었다. 2010년 10월 영국 파워네트웍스 인수 금액 57억7000만파운드(83억7000만달러)를 넘어선다.
합병 무산으로 다른 기업이 O2 인수자로 거론된다. 영국 버진미디어를 소유한 미국 리버티글로벌도 O2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CK허치슨은 이날 낸 성명에서 “집행위원회의 결정에 매우 실망한다”며 “위원회 결정을 검토해 법적인 문제를 포함해 다양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베스타거 집행위원이 인수·합병 계획을 거부한 것은 산업에 관계없이 처음이라고 파이낸설타임스(FT)는 보도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향후 통신업계 인수합병에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허치슨이 이탈리아에서 추진 중인 쓰리이탈리아와 러시아 빌벨콤 자회사인 윈스 합병도 무산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