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19> 바람을 닮다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19> 바람을 닮다

고기질여풍(故其疾如風). 손자병법 군쟁편 구절이다. 일본 전국시대 무장 다케다 신겐의 군기로 유명한 `풍림화산`이 여기서 나왔다. 움직여야 한다면 빠름이 바람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1930년대 벨연구소에 근무하던 월터 슈하트는 제품과 공정혁신에 계획(Plan), 실행(Do), 평가(Study), 개선(Act)으로 구성된 PDSA라는 방식을 제안한다. 수제자격인 에드워즈 데밍에게 이 방식이 전수된다.

토요타는 전후 일본으로 건너온 데밍을 고용한다. 데밍이 훈련한 수천명의 관리자는 토요타 생산 방식을 만들었다.

이와 함께 혁신 성공 사례가 쏟아져 나왔다. 후지, 혼다, 캐논 등 모두 비용은 적게 들이고 시간은 줄였다.

히로타카 다케우치 미국 하버드대 교수와 이쿠지로 노나카 일본 히토쓰바시대 교수는 `새로운 신제품 개발 게임(The New New Production Development Game)`에서 릴레이 방식을 버리고 럭비 방식을 선택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1993년 컨설팅사 스크럼의 최고경영자(CEO) 제프 서덜랜드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생산성을 더욱 높이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다. 몇 가지 도발 사례에서 힌트를 얻었다. 소프트웨어(SW) 개발에 새로운 방식을 제안했다. 스크럼(scrum) 방식이다. 럭비에서 선수가 어깨를 잇고 머리를 엇갈리게 마주 대는 것을 의미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프로젝트를 기한 내에 더 적은 비용으로 완성한다. 오류는 더욱 줄였다.

곧 더 새로운 방식이 요구됐다. 스타트업이든 성공한 기업이든 낯설고 격변하는 정보기술(IT) 산업에 적응해야 했다. 2001년에 SW 개발자 17명이 만났다. 서덜랜드는 스크럼을 대표했다. 다른 혁신 방식도 제안됐다. XP, 크리스털, DSDM, ASD, FDD 등이다. 모든 것에 합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새로운 철학을 애자일(agile) 방식으로 불렀다. 12개 원칙에 합의했다. `애자일 선언문과 원칙들`에서 애자일 이노베이션(agile innovation) 시대가 열렸다.

원래 SW 개발에서 비롯됐다. 옹호자는 다른 많은 혁신에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영진의 선택일 뿐이라는 것이다. SW 산업 성공을 남보다 먼저 경험하느냐의 차이다.

어떻게 이 방식을 적용할까. 혁신 과정에서 바람을 닮을 수는 없을까.

베인&컴퍼니의 대럴 릭비, 서덜랜드, 다케우치 교수는 기고문 `애자일 방식을 품으며(Embracing Agile)`에서 몇 가지를 제안했다.

애자일 방식은 단지 빠르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CEO가 정작 원칙과 반대로 해서 효율성을 떨어뜨렸다.

짧은 기한을 정해 놓고 너무 많은 계획을 벌인다. 최고 인재를 흩어 놓고 작은 업무에 쪼개 놓는다.

기민성을 높이는 데 투자해야 한다. 뛰어난 관리자를 골라 업무 시간 25%를 일상에서 빼낸다. 전사 차원으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적체된 업무와 장애물을 찾게 한다.

개인 대신 팀에 초점을 둬야 한다. 개인 성과와 업무량 대신 성과 가치와 구성원의 행복감으로 판단한다.

기민함에 장벽을 없애야 한다. 한 부문만 기민하게 움직인다고 해서 총체적 성과가 오르지는 않는다. 엉뚱한 곳에다 시간을 허비하면 실패한다.

다케다 신겐은 생전 버릇처럼 “사람이 성이요 성벽이며 해자다”라고 했다. 공교롭게 세 명도 기고문 말미를 조지 패튼 장군의 말로 끝맺는다. “어떻게 하라고 하는 대신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하세요.” 세상을 바꾸고자 한 17명의 선언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인재에 동기를 부여하라. 그들로 프로젝트를 감싸라. 그들이 원하는 환경을 만들고 투자하라. 신뢰하라.”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