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최초 발명되고 난 이후 차량용 부품은 오랜 기간 발전해 왔다. 기계, 기구로 구성된 자동차 부품 소재를 어떻게 경량화할지, 부품이 오랫동안 마모되지 않고 사용하려면 어떤 소재를 사용해야 하는지에 관심과 초점이 맞춰져 왔다. 하지만 자동차에 전기·전자 부품을 사용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는 전기·전자 제어장치를 제어하기 위한 소프트웨어(SW)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최근에는 자동차 부품 40% 이상이 전기·전자 부품으로 구성되면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자동차 SW는 전기·전자 장치를 제어하는 알고리즘을 구현, 자동차 움직임이나 탑승자 요구를 만족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기·전자 제어장치를 움직이게 하는 SW의 품질 결함이 발생하는 경우 운전자와 탑승자는 물론 외부 보행자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14년 바(Bar) 그룹의 토요타 급발진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에 발생한 토요타 차량 사고 원인은 자동차 전자제어장치 SW의 오류로 판명됐다. 이처럼 SW 품질은 자동차를 이용하는 인간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철저한 검증이 요구된다.
유럽의 자동차 메이커들은 자동차에 장착되는 전기·전자 제어장치 SW에 대해 `Automotive SPICE(이하 A-SPICE)`라는 차량용 SW 개발 프로세스의 적용을 요구한다. A-SPICE는 차량용 SW 개발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그 프로세스의 능력 수준을 결정하는 모델이라 할 수 있다. 2007년에 자동차 산업에서 적용되기 시작해 현재는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A-SPICE는 SW 개발 프로세스만을 주요 관심 대상으로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좋은 품질의 SW 개발을 위해 필요한 여러 프로세스를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SW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전자제어 시스템의 품질도 좋아야 한다. A-SPICE는 해당 시스템의 개발에 필요한 프로세스를 포함한다. 또 개발 프로세스를 관리하고 지원하기 위한 프로젝트 관리, 품질 보증, 형상 관리, 문제 해결 관리, 변경 요청 관리 등 프로세스도 포함하고 있다.
A-SPICE는 유럽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뿐만 아니라 북미 완성차 업체들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은 협력업체에 CMMI(Capability Maturity Model Integration) 또는 A-SPICE 개발 프로세스에 따른 SW 개발을 요구한다. 이는 A-SPICE의 요구 사항이 유럽 완성차 업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요구되고 있고, 차량용 SW 품질에 자동차 메이커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아직 SW 품질에 대한 관심이 그리 높지 않지만 최근 유럽 완성차 업체들의 영향으로 A-SPICE를 적용해 SW를 개발하는 국내 공급업체가 늘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올해부터 공급업체 선발 기준에 A-SPICE를 포함시켰다. 다만 아직은 A-SPICE에 대한 대응 체계가 구축된 건 아니다. 예를 들어 공급업체의 개발 프로세스에 대한 합평(Joint Review)이나 품질감사를 어느 정도 수준에서 수행할지, SW 개발에 필요한 엔지니어링 요구 사항이나 설계 관련 정보를 얼마나 상세하게 공급업체에 요구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나라도 전기자동차, 스마트 자동차 등 미래 자동차 시장으로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러한 자동차 시장에서 핵심 키워드는 전기·전자 장치로 옮겨가고 있다. 그 가운데 핵심은 그 장치를 움직이는 두뇌, 즉 SW에 있다. 이 때문에 우리가 미래 자동차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자동차 부품에 탑재되는 SW를 개발할 때 A-SPICE와 같은 체계화한 개발 프로세스를 적용, 자동차를 사용하는 인간에게 안전성과 편의성을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자동차 전장 SW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미래의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우리의 자동차가 선전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백재원 씨앤비스 대표이사 jwbaik@cnbi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