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모어 댄 무어 시대

[기자수첩]모어 댄 무어 시대

2년마다 반도체 트랜지스터 집적도가 두 배 증가한다는 인텔 창업자 고든 무어의 이론은 이미 폐기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인텔마저도 최근 프로세서 미세화 주기를 2년에서 3년으로 바꿨다. 억지로 하겠다면 어떻게든 집적도를 높일 수 있겠지만 공정비용 상승으로 오히려 원가가 높아지는 것이 무어의 이론을 종말에 이르게 한 배경이다.

몇 년 전부터 반도체 업계에선 `모어 댄 무어(More than Moore)`가 주요 키워드로 떠올랐다. 모어 댄 무어는 무어의 이론을 지속시키기 위한 방법론을 의미한다. 핵심은 더 높은 성능, 더 저렴한 원가를 달성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실리콘 칩을 패키징하고 테스트하는 후공정 중요도가 높아졌다.

애플이 TSMC에 아이폰7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A10 생산을 맡긴 건 후공정 경쟁력 때문이었다. TSMC는 애플에 첨단 패키징 방식인 팬아웃웨이퍼레벨패키지(FoWLP) 양산 기술력을 강조했다. TSMC는 독자 FoWLP 기술을 InFO(Intgrated Fan Out)라고 부른다.

FoWLP는 기술적으로 패키지 기판용 인쇄회로기판(PCB)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덕에 전체 칩 생산 원가를 크게 절감할 수 있다. 입출력(I/O) 포트도 원활하게 늘릴 수 있어 성능도 좋아진다. 패키지 면적 역시 절감된다.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가 TSMC에 차세대 애플 칩 위탁생산 물량을 뺏긴 건 결국 후공정 경쟁력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삼성은 뒤늦게 그룹 차원에서 이 기술에 대응할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모어 댄 무어 시대가 오면 시장 지형도가 크게 변한다. 우선 PCB 산업은 크게 침체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패키지 기판용 PCB는 관련 업종에선 고부가가치 대표 제품이었다. FoWLP 기술이 대중화되면 이 시장은 없어지는 것이다.

패키지용 장비, 소재 산업은 견조한 성장세를 구가할 것으로 보인다. 패키지 관련 인력 수요도 확대될 것이다. 기술을 갖춘 시스템반도체 외주 패키지 업체는 벌써부터 물량이 늘고 있다.

시장 트렌드가 바뀌면 위기와 기회 요인이 동시에 생긴다. 모어 댄 무어 시대를 맞이해 우리 반도체 산업계도 철저하게 준비해야 도태되지 않는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