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판교 vs 대덕

[데스크라인]판교 vs 대덕

국내에는 10여개 밸리가 조성돼 있다. 대부분 미국 실리콘밸리를 표방한다. 이 가운데 대표로 꼽히는 곳이 판교와 대덕이다.

판교는 조성된지 4년밖에 안됐지만 폭풍 성장세가 주목된다. 대덕은 조성된 지 40년이 넘었다. 한때 제2의 실리콘밸리로 각광 받았지만 지금은 볼품없는 `노새` 신세가 됐다.

둘이 바라본 곳은 같았을지 몰라도 사업화를 향해 걸어 온 길은 달랐다. 판교는 특별한 인프라 없이 조성됐다. 반면에 대덕은 매년 3조원씩 쏟아붓는 정부 출연 연구 기관과 대기업 연구소를 끌어안고 시작했다. 처음엔 연구학원도시로 만들었고, 나중에 산업과 접목됐다.

결과물을 놓고 보면 판이하다. 관과 민간의 절묘한 조합 여부가 이들의 차이를 만들어 놨다. 타율이 아니라 자율이 더 탄력성 강하고, 과학기술 인프라보다는 문화가 더 중요하다는 걸 여실히 보여 준다.

66만㎡에 불과한 판교 소재 기업의 매출은 70조원에 이른다. 2011년 83개에 불과하던 기업은 4년 만에 13배인 1120여곳으로 늘었다. 지역총생산 규모는 경기도의 23%를 차지한다.

판교의 성공 요인은 단연 스토리가 있는 `문화`를 만들려고 애썼다는 점이다. 실리콘밸리의 강점이 토론과 네트워킹 문화라고 얘기하듯 판교도 `스토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활발한 기업 간 네트워킹도 판교의 강점이다.

판교글로벌리더포럼에서는 최고경영자(CEO)들이 자유롭게 만나 서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 CTO클럽도 마찬가지다. 컨텍 아카데미는 경영 등을 포함한 인문사회 강좌 및 교육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과학에 인문을 자연스럽게 접목시켰다.

판교 성공의 배경엔 종사자 7만명 가운데 70%를 차지하는 20~30대가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사고가 유연하고 자유롭다. 그만큼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톡톡 튀는 만큼 활력이 넘친다.

관의 역할도 두드러졌다. 경기도가 네이버, CE코리아 등 대기업을 대거 유치한 집념과 열정이 합쳐져서 오늘의 성공을 만들어 냈다.

판교밸리.
판교밸리.
대덕밸리.
대덕밸리.

대덕은 어떤가.

지난 40년 동안 40조원을 쏟아부은 20개 정부 출연 연구 기관과 연구중심대학 KAIST, 충남대 등이 포진해 있다. 여기에 매년 수십조원을 쓰는 40여 대기업 연구소까지 곳곳에 둥지를 틀었다.

물론 최근 연구소기업이 10여개 창업됐다. 그렇다고 대덕밸리(대덕특구)를 “살아 있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활력을 주도해야 할 정부 출연 연구 기관은 노쇠했다. 2만명의 연구원들이 일을 하고 있지만 50~60대가 주류인 대덕에서 창업을 주도하기란 쉽지 않다. 정부 주문에 따라 연구소기업이 늘긴 했지만 개인 창업은 거의 전멸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처럼 창업 붐은 더 이상 없다. 민간 중심의 벤처 생태계는 싹이 나다 말라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선순환 구조를 갖지 못하는 생태계는 존재의 의미가 없다.

대덕엔 토론 문화도 약하다. 자신의 연구만 하면 되는데 굳이 교류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삼삼오오 모여서 토론할 풍토도 마련돼 있지 않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 퇴근하면 꼬박꼬박 월급이 나온다.

대덕대교 입구에 서 있는 `벤처의 요람, 대덕밸리`라는 표석은 이제 퇴색했다.

되살아 나려면 새판을 짜야 한다.

박희범 전국부 데스크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