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한류는 국가 자부심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의 외국 방문이나 상품 전시회에 한류를 앞장세우곤 한다. 최근에는 한류가 미래 먹거리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드라마, K팝, 영화 등 대중문화로 시작한 한류가 이제는 음식, 뷰티, 패션, 여행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한류가 속한 창조산업은 기발하고 새로운 것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 이른바 `재빠른 추격자` 전략이 잘 안 통하는 영역이다. 선발 주자가 돼야 살아남기 때문에 한류 경쟁력은 미래의 한국 경제를 위한 시금석이 아닐 수 없다.
2015년 이후 심화되고 있는 수출 둔화세로 대기업-수출 중심 경제에 경고등이 켜지고, 중소·중견 기업의 해외시장 개척이 중요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소비재와 서비스 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중국 내수시장을 어떻게 개척하는지가 중대 과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 내수소비 시장은 합리적 가격으로 우수한 제품을 제조하기만 하면 팔리는 가공무역과 달리 일반 소비자를 설득하고 유통망을 뚫어야 한다.
지난 5월 중국 시안에서 열린 실크로드 박람회에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주영섭 중소기업청장이 함께 참석, 우리 중소기업의 시장 개척을 독려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기회와 한류 브랜드를 활용해 중국 내수시장 진출을 위한 일대 전환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 정부의 의중이다. 프리미엄 소비재 중심으로, 2·3선 도시를 거점으로 온·오프라인을 활용하고 중소기업이 연대해 진출하겠다는 전략이다.
박람회 행사 기간에는 후허핑 산시성(陝西省) 성장 등이 함께한 업무 협약식이 있었다. 여기에서 SM엔터테인먼트와 중국 국영기업 간 산시성 화산 관광지구 내 관광리조트 개발 사업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한국 측이 콘텐츠, 기획, 컨설팅을 제공하고 중국 측이 시설물 건설과 마케팅 등을 담당한다. 상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에서 이익을 나누는 합작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함으로써 세계 관광 명소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시안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있다. 중국에 대한 가장 통 큰 투자가 이뤄진 곳에서 미래 지향의 협력 사업이 시작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지금 중국이 한국으로부터 가져가길 원하는 분야는 제조업에서는 반도체, 창조산업에서는 콘텐츠 비즈니스일 것이다. 한·중 간 시너지가 가장 큰 두 분야의 합작 사업이 같은 곳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우연`이 아닐 수 없다.
반도체 강국 한국과 반도체 대국 중국이 협력한 이후 또다시 문화콘텐츠 분야에서 협력 사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앞으로 우리의 강점을 활용, 중국 거대 시장을 개척하는 중요 사례가 될 것이다. 중국 시장은 더 이상 일반 제품으로 승부할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점이 지속될 수 있는 분야에서 지분과 수익을 나누는 비즈니스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이번 박람회에서 국내 중소기업과 협력해 한류스타를 브랜드로 내세운 상품을 선보인 융합 상품관을 운영, 중국 현지 기업과 관람객의 뜨거운 호응을 끌어냈다. 식품, 패션의류, 화장품 등 우수 중소기업 제품들이 한류 브랜드에 힘입어 중국 내수시장에 공동 진출을 모색한 것이다. 앞으로 국내 중소기업 간 다양한 협업으로 패키지형 수출 모델이 나올 것이 기대된다.
한국경영학회 연구 조사에 따르면 한류 자산 가치는 2012년 기준으로 이미 LG전자와 포스코의 기업 가치를 더한 것보다 크다. 제조 부문 시장 가치가 하락세인 것에 반해 한류 가치는 계속 커질 것이다. 그만큼 우리 소비재와 서비스 부문의 경쟁력을 제고시킬 잠재력이 커진다는 이야기다. 한류 콘텐츠가 지닌 브랜드 파워를 지렛대 삼아 해외 시장을 개척하고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여지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한류 상승세에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홍콩류가 그랬듯 언젠가 한류에 식상하지 않을까. 문화 자존심을 걸고 국가 차원에서 엄청난 자금을 쏟아붓고 있는 중국 문화콘텐츠 굴기에 곧 따라잡힐 것이라는 등 걱정거리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러나 한류는 일반 제품과 같이 수명 주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식 창의성이 만들어 낸 결정체로서 우리가 하기에 따라 결코 마르지 않고 쓰면 쓸수록 더 샘솟을 수 있다.
한류 발전은 단순한 예측 대상이 아니라 한국 경제가 21세기에 살아남기 위한 도전 과제다. 특히 미국과 중국, 서구와 아시아 틈바구니에서 공동 가치를 창조함으로써 수많은 틈새시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선발 주자로서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은 한류로 대변될 수 있을 것이다.
이장우 경북대 교수(전자부품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