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육군 대령이 어느날 폭탄선언을 했다. “군복 벗고 창업하겠다.”
`워게임` 분야 한국 선두업체인 차진섭 심네트 대표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군 진급 대상자로 정년이 6년이나 남았는데도 가족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대령으로 예편했다. 이유는 창업하기 위해서였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산업공학 박사 출신인 그의 예편 소식을 듣고 군 관련 연구소와 대학에서 좋은 조건으로 손짓했지만 창업 초심(初心)은 변하지 않았다.
1999년 1월에 예편한 그는 그해 3월 심네트를 창업했다. 17년이 흘렀다. 심네트는 그동안 최고 기술력을 바탕으로 매년 성장을 거듭하면서 제대군인 고용 우수 기업, 취업하고 싶은 기업, 일하기 좋은 으뜸 기업, 유망 중소기업으로 뽑혔다.
차 대표를 지난 6월 9일 서울 구로구 디지털로 심네트 사무실에서 만나 중년 창업 성공 이야기를 들었다. 그에게 과거의 대령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중후한 학자를 만난 느낌이 들었다.
-군에서 몇 년 근무했나.
▲육사 30기로 입교해 1974년 소위로 임관했다. 25년 군 생활을 마감하고 1999년 1월 말에 창업을 위해 대령으로 예편했다. 대위 때 미국 해군대학원에서 산업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소령으로 있으면서 육군교육사령부에서 워게임 개발 과제를 맡아 한국 최초로 워게임 모델을 개발했다. 이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산업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차 대표는 귀국 후 육군본부 정책실과 기획관리참모부 운영분석장교, 한미연합사 운영분석단 부단장, 미8군 모의센터 선임기획관 등 주요 보직을 거쳤다. 연합사와 미8군에서 워게임 분야 한국 측 대표로 7년 동안 일했다. 당시 한국은 워게임 시스템이 없어서 미군이 개발한 시스템으로 분석, 훈련을 했다. 그 사이 대령으로 진급했고, 국방M&S 활용 방안 연구를 포함해 20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장군 진급 대상자가 됐지만 인생 진로를 변경, 창업에 도전했다.
- 어떤 분야를 창업하고 싶었나.
▲당시 미국 M&A(modeling and simulation)시스템은 한국 무기체계나 작전 환경, 교리와 맞지 않았다. 한국군 무기체계와 작전 환경에 맞는 한국형 모델 개발이 절실했다. 그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게 인생 진로를 창업으로 바꾼 이유다.
-가족 반대는 심하지 않았나.
▲가족 반대가 제일 심했다. 장군 진급 대상인 데다 정년을 6년이나 남겨 놓고 “창업을 하겠다”며 군복을 벗겠다는데 누가 찬성하겠나. 아내는 “그게 말이 되느냐”며 극구 반대했다. 주변에서도 무모한 도전이라고 말렸다. 예편 소식을 듣고 대학과 군 관련 연구소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있었지만 관심이 없었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창업이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었다.
-언제 창업했나.
▲1999년 1월 말에 예편하고 그해 3월 중순 창업했다. 나를 포함해 3명이 시작했다. 군대는 전쟁에서 이기는 법만 가르친다. 기업 비즈니스에 대해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즉생(死則生)의 각오로 임했다.
그는 창업 준비를 철저하게 했다. 관련 기술을 확보하고 구체화한 비즈니스 모델을 마련했다. 그 덕분에 창업과 동시에 컨설팅을 수주, 매출을 올렸다.
-중년 창업인 데다 낯선 환경에서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했나.
▲기업이 작을 때는 별 어려움이 없지만 규모가 커지면 자금 문제가 생겼다. 창업의 3대 요소는 기술, 인력, 자본이다. 이 가운데 기술력은 확보했지만 자금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았다. 다행히 사업계획과 비전을 금융기관에 제출, 자금난을 해결했다. 내가 직접 겪어 보니 어디서나 신뢰가 가장 중요했다. 금융기관에서는 사업계획 실현 가능성을 따지고, 다음으로 대표이사 신뢰도와 능력을 중요시했다. 창업자들이 명심해야 할 점이다.
-워게임의 한국 수준은.
▲이 분야의 세계 최고 수준은 단연 미국이다. 영국과 독일이 2위 그룹이다. 한국은 5위권에 속한다. 워게임 기술은 정보기술(IT), 교전 논리, 데이터가 핵심이다. 한국은 그동안 미군한테 워게임 기술을 배우고 관련 데이터를 얻었다.
-워게임 자격증도 있나.
▲워게임 모델 자격증은 HLA/RTI 인증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한국군이 개발한 모델들은 미국 국방성 산하기관에서 인증을 받았다.
-한국 기술인증 기관은.
▲아직은 인증 기관이 없다. 그동안 모델을 개발하면 미국 국방성에서 무료로 인증을 받았다. 지금은 돈을 내야 한다. 금액이 무려 1억원이다. 이로 인해 방위사업청 산하 국방기술품질원에서 한국군 워게임 모델에 대한 HLA/RTI 인증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2018년부터 인증한다는 목표인데 가능할 것으로 안다. 이는 막대한 국부 유출과 관련한 일이다. 하루빨리 우리가 인증해야 한다.
-북한의 워게임 수준은.
▲북한의 해킹 수준은 상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워게임은 초보 수준이다. 교전 논리와 데이터 생성이 어렵기 때문이다.
-자체 해킹이나 바이러스 보안 대책은.
▲보안 대책은 거의 완벽하다고 자신한다. 이 시스템은 개발과 운용 측면으로 구분한다. 개발은 업체에서 하지만 운용은 군에서 주관한다. 우리는 외부 인터넷과 분리된 독립 환경에서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해킹은 원천 차단한다. 회사 시설과 인력에 대해서는 군 보안기관의 보안인증 절차를 거친다. 그동안 단 한 건도 해킹이나 바이러스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수시로 보안 점검을 받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전문직 예비역의 활용 방안은.
▲군 정보화가 속도를 내면 관련 분야 전문직 예비역의 일자리가 늘 수 있다. M&S시스템 개발에도 이 분야 예비역의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하다. 이 분야가 커지면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
-중년 창업자들에게 해 줄 조언은.
▲100세 시대 일자리 창출은 창업이 필수다. 하지만 창업에 성공하려면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중년 창업에 실패하면 노후를 망칠 수 있다. 이에 따라서 먼저 창업하고자 하는 분야의 핵심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핵심 기술 없이 창업하면 성공할 수 없다. 음식점을 개업한다면 최소한 주방장 경험을 해야 한다. 막연하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자세로 창업하면 망한다. 또 시장조사, 미래 환경 변화, 비즈니스 결과를 사전에 시뮬레이션해서 예비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이때 예상되는 난관을 리스트로 만들고 상황별 대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군(軍)에서는 이를 후보 계획이라고 하는데 늘 차선의 대안을 마련해 놓는다.
차 대표는 자신이 경험한 과거 일을 소개했다. 미국 유학 시절 박사 학위를 일정 기간 안에 받지 못하면 진급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공부를 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는 학위를 제때 못 받아 진급을 못하면 예편해 `공인중개사`를 하겠다는 후보 계획을 세웠다. 그러자 마음이 평온해져 순조롭게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했다.
-군 입대를 기피하는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군 입대는 인생의 낭비가 아니다. 삶의 폭을 넓히고 강인한 정신력을 길러 주는 교육의 요람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나는 군에서 공수훈련, 유격훈련 같은 고된 훈련을 다 받았다. 해외 학위 취득이나 창업 후 기업을 운영하면서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이보다 더한 극한도 극복했는데 이걸 못 이기나` 하는 생각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군 복무자에게 가산점 혜택을 줘서 조국을 내가 지켰다는 자긍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아니면 다른 보상책으로 사병 급료라도 대폭 인상해 주길 바란다.
-앞으로 계획은.
▲한국형 M&S 모델의 질(質) 향상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외형은 선진국을 능가한다. 아랍권과 중동, 동남아 지역에서 한국 M&S 경쟁력이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다. 호주와는 수출 일보 직전까지 갔지만 호주 측 사정으로 무산됐다. 질 향상을 위해 모의 논리와 데이터의 지속 개발이 필요하다. 그 다음은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AI) 개발이 절실하다. 미군은 워게임 모델에 오래전부터 AI를 적용했다. 우리는 아직 초보 단계다. AI를 활용하면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회사가 성장하면 그동안의 중년 창업 경험을 살려 사회 공헌 활동으로 스타트업 발굴 및 육성을 돕고 싶다. 특히 대기업의 오염 방지로 밝고 건전한 사회 구현에 기여하고 싶다.
심네트는 전체 직원의 44%가 석·박사 출신이다. 이달 말께 서울 사무실 외 대전 유성구의 3729㎡ 대지 위에 지상 2층 1452㎡ 규모의 사업장을 완공할 계획이다.
-좌우명과 취미는.
▲좌우명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과 `필생즉사필사즉생(必生則死必死則生)`이다. 나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한다. 과정마다 최선을 다하면 결과가 나빠도 수용한다. 다른 하나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적당히 하면 성취할 게 없다. 취미는 바둑(아마 7단)과 골프다.
도전하는 인생은 나이와 무관하게 아름답다. 차 대표의 중년 창업 성공은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꽃중년들에게 `은빛 열정`을 샘솟게 하는 자극제가 될 게 분명하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