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7월 필립스는 마쓰시타와 기술제휴 교섭을 시작한다. 이미 해외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고,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1946년 26개국에 생산 공장을 운영했고, 판매 조직은 44개국에 있었다. 마쓰시타와는 합작회사가 대안이라고 보았다. 기술 지도를 제공하되 경영은 직접 하지 않는 형태. 필립스에도 새로운 방식이었다. 자본금은 6억 6000만엔. 마쓰시타가 70%를 출자하고, 7 %의 기술지도료를 받는 조건을 걸었다. 마쓰시타는 일본 시장에 대한 경영 노하우의 대가로 경영지도료 3%를 요구해 온다. 결국 기술지도료 4.5%에 경영지도료 3%로 한다. 1952년 12월 마쓰시타전자공업이 탄생한다.
승자는 마쓰시타뿐만이 아니었다. 필립스에는 매력적인 로열티가 보장됐다. 기계와 부품의 판매처가 됐다. 담장 높은, 침투하기 힘든 시장이었다. 국민 기업이 자기 손으로 생산한 제품을 판다는 것은 비교할 수 없는 이점이었다. 필립스 직원 수는 1950년 9만명에서 1975년 40만명으로 늘어난다.
존스홉킨스메디슨(Johns Hopkins Medicine)도 파트너가 필요했다. 수익은 8조원을 넘었지만 예산은 부족했다. 새로운 수입원이 필요했다. 국내 수입은 정점에 와 있었다. 이스탄불에 의료센터를 짓기로 한다. 아나돌루 재단이 있었기에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장은 터키 국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의료 기술이나 경영 역량은 태부족이었다. 전통은 모범사례와 충돌하고 있었다.
존스홉킨스메디슨의 내부 문제도 있었다. 1889년에 개원했고, 26년 동안 22차례 미국 최고의 병원으로 뽑혔다. 의사만 2000명 가까웠다. 존스홉킨스메디슨도 단순한 비영리 기관이 아니었다. 존스홉킨스병원을 비롯해 6개 병원, 4개 의료센터를 운영했다. 메디슨 전체를 따지면 직원은 4만1000명에 달했다. “모든 것이 효율적이지는 않지요. 무엇보다 조그마한 수익을 위해 명성에 흠이 가는 것을 원할 경영진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거기다 존스홉킨스의 협력 병원이라고 정문에 붙이는 계약이라면 더 민감할 수밖에 없었지요.”
가능성은 눈에 보였다. 필립스가 그랬듯 시장을 잘 아는 누군가와의 협력은 필수였다. 경영진은 협력에 신중하길 원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의 보건 당국이나 투자자는 2년씩 기다릴 수 없었다. 새로운 방식이 필요했다. 프로세스를 6개월로 줄여야 했고, 모 조직의 관료주의에서도 자유로워야 했다. 별도의 위성 조직을 만들기로 한다. 존스홉킨스메디슨 인터내셔널(JHI)은 이렇게 세상에 나온다.
몇 가지 운영 원칙도 만든다. 첫째 위험을 관리해야 했다. 간단하지만 문제 진단용 체크리스트를 만든다. 기회 요인은 충분한가. 혁신에 걸림돌은 없는가. 경영 안정이 가능한가. 둘째 외부 인증을 받도록 했다. 더 많은 혁신이 왜 필요한지 객관적으로 평가받게 했다. 셋째 부족한 전문 역량을 채운다. 병원장을 놓고 다투지는 않았다. 그 대신 최고간호책임자를 파견했다. 재단도 곧 운영에 문제가 있음을 느낀다. 병원장을 공석으로 두기로 한다. 법을 어기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넷째 문화가 충돌할 때 회피하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수용하는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핵심 문제라면 적임자를 파견했다. 암센터를 개설한 싱가포르에서는 과장의 진단에 토를 달 수 없었다. 규칙을 정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시범을 보이는` 방법을 택했다. 위계 문화가 적은 곳에서 훈련받은 간호사를 파견했다. 논란거리가 됐고, 불쾌해 했지만 문제는 천천히 해소됐다.
존스홉킨스메디슨은 성공 방식을 고수하는 대신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스크래치(scratch)부터 시작하는 대신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대부분 파일럿 프로젝트부터 시작했고, 그 후 도전 과제로 옮겨갔다. 뭔가 부족해 보이는 협력이지만 진지하게 고민했다. “우리는 일반 병원이라면 머리를 긁적여야 할 제안을 기꺼이 검토합니다. 맨바닥부터 시작해서 혁신 모델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스크래치부터 시작하는 것이지요.”
아나돌루메디컬센터는 2005년 2월 문을 열었다. 지금 협력 병원은 브라질, 칠레, 인디아, 일본, 레바논, 파나마, 페루, 터키에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싱가포르는 공동 소유 형태고,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캐나다·중국·콜롬비아·멕시코에는 연구센터를 두고 있다. 모두 형태는 다르지만 존스홉킨스메디슨 입장에서는 새 수입을 만드는 것이었다. 스티븐 톰프슨 존스홉킨스메디슨 최고경영자(CEO)의 말처럼 기민(agile)하기 원한 조그만 위성 조직이 만든 `큰 성과`였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