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50년] <2>소리 없이 쑥쑥 큰 中 반도체… 시스템 분야는 이미 한국을 추월

[한국 반도체 50년] <2>소리 없이 쑥쑥 큰 中 반도체… 시스템 분야는 이미 한국을 추월

지난 50년간 한국 반도체 산업은 눈부신 발전을 일궜다. 반도체는 한국의 대표 수출 품목으로 수십 년째 이름을 올리고 있다. 미국, 일본, 유럽을 추월하며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톱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나머지 영역 특히 시스템반도체 설계가 주축인 팹리스 산업 분야에선 중국이 한국을 앞섰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병인 한중 시스템IC 협력연구원장은 “메모리는 몰라도 시스템반도체로 대표되는 팹리스 분야는 중국이 한국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 원장은 중국 선전에 한중 시스템IC 협력연구원이 세워졌던 2012년부터 중국에서 현지 반도체 산업을 관찰해 온 인물이다.

그가 예로 든 것이 화웨이의 반도체 설계 자회사 하이실리콘, 칭화유니그룹 자회사 스프레드트럼이다.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시스템온칩(SoC)이 주력 제품이다. 이 원장은 “두 회사가 세계 반도체 산업계 성장사로 볼 때도 가장 빠르게 성장했다”라고 평가했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하이실리콘과 스프레드트럼은 중국 내 반도체 설계, 생산 업체 가운데 매출액 순위 1, 2위다. 지난해 연간 매출액은 하이실리콘이 31억달러, 스프레드트럼은 13억달러다. LG계열 한국 최대 팹리스 업체 실리콘웍스의 지난해 매출은 5300억원이다. 지난해 연매출 1000억원을 넘겼던 국내 반도체 설계 업체는 실리콘웍스를 포함해 실리콘마이터스, 픽셀플러스 정도다. 중국 현지 팹리스 업체는 1등부터 20위권 업체까지 매출액이 1000억원을 상회한다. 매출액 규모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IC인사이츠에 따르면 글로벌 톱50 팹리스 반도체 설계 업체로 이름을 올린 한국 기업은 실리콘웍스 한 곳 밖에 없었다. 미국은 19개, 대만 16개, 중국 기업이 9개다.

메모리를 제외한 생산 분야에서도 중국이 한국보다 한 수 위다. 순수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 SMIC와 화훙그레이스는 동부하이텍보다 위탁생산 매출이 높다. 후공정 패키지 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싱가포르 스태츠칩팩을 인수한 중국 JCET는 세계 최대 패키지 그룹사로 거듭났다. 한국 패키지 기업은 대부분 고객사가 메모리에 국한돼 있어 최근 실적은 하향세를 걷고 있다.

반도체 장비 분야에서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기업이 나왔다. 중국 AMEC(Advanced Micro-Fabrication Equipment Inc)는 미국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출신 엔지니어들이 중국으로 돌아가 만든 식각 장비 전문 업체다. 식각 장비는 노광 장비 다음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품목이다. SK하이닉스도 이 회사 장비를 일부 사용한다. 어플라이드, 램리서치 등 미국 장비 업체는 AMEC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벌였다. 이는 AMEC가 `견제 대상`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중국 반도체 산업이 이처럼 클 수 있는 이유는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회계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와 중국반도체산업협회(CSIA)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전 세계 반도체 매출액(3247억달러)에서 중국 비중은 55%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중국 내 반도체 자급률은 11.7%에 그쳤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 수입액이 석유 수입액보다 많은 것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며 세제감면, 보조금 지급 등 강력한 자급률 확대 정책을 펴고 있다. 중국 반도체 산업계가 크는 주된 이유다.

송용호 한양대학교 교수는 “메모리를 제외하면 시스템반도체로 대표되는 팹리스 분야는 중국이 한국보다 딱 5배 크다”며 “중국이 한국을 쫓는 것이 아니라 이미 대부분 영역에서 추월당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병인 원장은 “중국은 시스템반도체 분야 성공과 자신감을 메모리에도 적용하려 하고 있다”며 “이 경우 한국과 직접 경쟁 체제에 돌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견해도 있다. 너무 겁먹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중국이 최대 반도체 구매국인건 맞고, 그 시장을 공략해 세계 시장에서 우뚝 선다는 마음가짐으로 기술 개발과 영업에 임하면 된다”며 “중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무시할 필요도, 그렇다고 너무 겁낼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