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최민영 기자] 8명의 걸그룹 멤버가 한 자리에 모여 토너먼트를 진행한다. 대결 주제가 음악도 아니고 퀴즈도 아닌 단순한 음식 먹기다. 대학교 축제에서나 볼 법한 이 토너먼트는 종합편성채널 JTBC 예능프로그램 ‘잘 먹는 소녀들’의 포맷이다.
지난달 29일 첫 방송한 ‘잘 먹는 소녀들’은 어떤 야식을 먹을지 고민하는 시청자들에게 걸그룹 멤버들이 직접 메뉴를 추천하고 먹는 대결을 펼치면서 ‘먹방 요정’을 가리는 예능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방송 직후 시청자들의 혹평 세례가 이어졌다. 여러 가지 지적사항들이 봇물처럼 쏟아졌고, 제작진 또한 이를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 보고도 알 수 없는 ‘미스터리’ 콘셉트
매일 밤 야식 유혹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걸그룹 멤버들이 야식 메뉴를 직접 추천해준다는 당초 기획 의도와는 달리 베일을 벗은 ‘잘 먹는 소녀들’은 단순한 먹방 대결이었다.
누리꾼들은 이 프로그램이 대중에게 뭘 보여주려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출연자가 대결에 승리해서 ‘먹방 요정’이 된들 무슨 의미가 있고, 시청자들은 이를 TV로 왜 봐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재미있으려고 보는 예능프로그램에서 굳이 의미를 찾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연예인들이 음식을 먹고 감탄하는 똑같은 리액션만 보자고 시청자들이 TV 앞에 앉아 있을 이유도 없다.
◇ 인기 콘텐츠들의 마구잡이 조합
한 스포츠 구단이 우승을 노리기 위해 쟁쟁한 실력을 갖춘 선수들을 비싼 돈 들여 대거 영입했다. 하지만 감독의 전술이 형편없다면 제 아무리 올스타급 라인업을 구성하더라도 우승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잘 먹는 소녀들’도 걸그룹, 먹방, 인터넷 생방송 등 최근 인기 콘텐츠들을 모두 가져다 조합한 프로그램이다. 대세라고 불리는 요소들을 모두 합친 만큼 기대치는 높았지만 이를 제대로 조화 시키지 못하자 오히려 역효과만 나고 말았다.
인기 걸그룹 멤버들을 대거 섭외했으면 이들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도록 제작진이 틀을 갖춰놨어야 했다. 출연자들 인기에만 의존한 구성은 시청자들의 탄식만 유발했다.
◇ 불필요한 시청자 투표 시스템
토너먼트 대결 구조에 시청자 투표까지 더해지자 ‘먹방 요정’을 가려야 했던 프로그램은 최고 인기 멤버 뽑기 방송으로 바뀌었다.
그러다보니 팬덤이 많은 걸그룹 멤버일수록 대결에서 더 유리했다. 물론 제작진은 인기투표로의 변질을 막기 위해 심사위원과 패널들의 평가도 승부에 반영했다. 하지만 어차피 판정단 점수를 따로 매길 계획이었으면 굳이 시청자 투표를 할 이유가 있었는지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한 소속사 관계자는 “먹방 대결인데 누리꾼 투표가 진행되니까 인기 대결로 변질된 것 같아 아쉬웠다”며 “프로그램 특성 상 음식을 먹고 어떤 식으로 맛있게 표현하는지를 더 부각시켰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오전 1시가 넘는 시간까지 많은 양의 음식을 먹게 만들어 가학성 논란이 제기됐으며, 대결 구조 때문에 먹는 걸 즐기지 못하고 이기는 데만 집중했던 일부 출연자의 모습이 씁쓸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결국 제작진은 방송 2회 만에 프로그램 전면 개편을 단행하기로 결정했다.
JTBC 관계자는 “‘잘 먹는 소녀들’ 타이틀을 비롯해 프로그램 포맷, 편성시간을 모두 바꿀 계획”이라며 “대중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 더 나은 프로그램을 선보일 것”이라고 전했다.
개편 이후 편성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며 ‘잘 먹는 소녀들’의 방송 시간이었던 13일 오후 9시30분에는 다른 프로그램 재방송이 전파를 탈 예정이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최민영 기자 meanzerochoi@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