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잇으로 잘 알려진 미국 3M은 변신의 대가다.
3M은 1902년 창업 당시 사포(砂布) 원료를 캐는 회사로 출발했다. 그러나 1920년대에 접어들자 사포와는 전혀 상관없는 스카치테이프, 1950년대에는 나일론 수세미를 각각 개발하며 대박을 터뜨렸다. 지금 3M은 액정표시장치(LCD) 광학필름 등 산업용 소재가 핵심 매출원인 회사로 변모했다. 끊임없는 혁신과 변신이 3M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100년 기업` 반열에 올려놨다.
3M처럼 성공한 회사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 닌텐도처럼 변신과 회생의 기로에 서 있는 기업도 있다. 한때 변신에 성공했으나 끝내 몰락한 핀란드 노키아도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1889년에 창업한 닌텐도는 3M 못지않게 변신에 능한 기업이다. 이 회사는 화투 생산 업체로 시작했다. 1953년 세계 최초로 플라스틱 재질의 트럼프 카드를 생산하면서 성장 가도를 달렸다. 이후로도 장난감, 비디오게임 회사로 변신에 성공하며 세계 기업으로 우뚝 섰다. 다만 최근에는 주력 사업인 비디오게임기의 판매 저하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문가는 닌텐도가 새로운 변신에 성공해야만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휴대폰 시장을 호령하던 핀란드 노키아는 1865년 목재 회사로 출발했다. 회사는 성장을 거듭해 1980년대 수십 개 계열사를 거느린 거대 그룹사로 도약했다. 이후 심각한 부실로 그룹 전체가 망할 지경에 이르자 1990년대 들어 통신 사업에만 몰두했다. 한동안 휴대폰 시장에서 노키아를 꺾을 기업은 없어 보였다. 적절한 시기에 변신을 시도했고, 이것이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을 열자 거함 노키아는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 자리에는 삼성전자가 꿰 차고 들어앉았다. 변신의 때를 놓친 대가는 이처럼 컸다.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업체 인텔도 최근 변화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PC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정보기술(IT) 시장의 성장을 이끌어 왔다. 그러나 근래 들어 마이너스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PC용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에서 점유율이 95% 이상인 인텔은 PC 판매량에 따라 실적이 좌우된다.
최근 인텔은 핵심 경쟁력은 그대로 유지한 채 공략 시장을 데이터센터, 5G 통신(인프라, 단말기), 사물인터넷(IoT)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른바 `뉴 인텔 인사이드`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 인텔의 목표다.
브라이언 크러재니치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회사 블로그에 이 같은 회사의 전략 방향을 공개했다. 그는 “인텔을 PC 중심 기업에서 클라우드와 연결된 수십억개의 디바이스 성능을 책임지는 기업으로 전환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인텔은 여전히 세계 반도체 업체 가운데 가장 많은 매출을 낸다. 반도체 설계, 제조 기술력 역시 앞서 있다. 그러나 노키아 사례를 똑똑히 지켜본 인텔은 적기 변화, 적기 혁신을 해야만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잘 아는 듯하다.
인텔은 한 차례 `큰 변신`에 성공한 기업이다. 약 30여년 전 인텔의 주력 제품은 CPU가 아닌 메모리칩이었다. D램을 처음 개발한 기업이 인텔이다. 지금 삼성전자가 장악하고 있는 바로 그 시장에서 인텔은 차근차근 성장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에 일본 기업이 메모리 시장에 참여하면서 인텔은 수익성 악화로 어려움을 겪는다. 1986년에는 15년 전 회사가 상장된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인텔 2대 CEO 고든 무어와 3대 CEO 앤디 그로브는 그 시기에 `메모리칩 시장 철수`라는 강수를 꺼내 들었다. 직원 7200명을 해고했고, 공장 7곳을 폐쇄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인텔은 전체 수익의 30%를 연구개발(R&D) 등에 사용했다. 결국 인텔은 메모리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마이크로프로세서 CPU 시장을 휘어잡았다. 당시 메모리칩 사업의 철수는 뼈아픈 결정이었지만 이러한 결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인텔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크러제니치 CEO가 최근 전략의 변화를 언급하면서 “무궁무진한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