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와 시장조사업체 IHS 등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는 3473억달러 수준이다. 이 가운데 메모리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3%인 807억달러였다. 발광다이오드(LED) 등 광전자소자, 센서·모스펫 등 개별(Discrete) 제품군을 제외한 아날로그, 로직·마이크로컴포넌트 같은 시스템반도체 시장 규모는 2050억달러로 59% 비중을 나타냈다. 메모리보다 시스템반도체 시장 규모가 두 배 이상 크다.
한국은 메모리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이뤘다. 세계 시장 점유율이 57.7%에 이른다. 그러나 더 큰 시장인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선 경쟁력이 미미하다. 세계 시장 점유율이 5%도 안 된다. 그나마도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 매출이 포함돼 있어 이 정도 점유율이라도 나왔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미국, 일본, 대만과 비교해 메모리 쪽으로 매출 구조가 심하게 편중된 구조를 하고 있다. 메모리 산업의 경쟁력이 워낙 막강한 것도 이유지만 시스템반도체의 경쟁력도 그만큼 약하다. 팹리스(공장 없이 반도체 설계만 하는 기업) 분야에선 이미 중국이 한국을 따라잡았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중국 1, 2위 팹리스 업체인 하이실리콘과 스프레드트럼의 연간 매출액은 각각 3조원 및 1조원을 상회한다. 세계 톱50 팹리스 목록에 이름을 올린 한국 기업은 한 곳(실리콘웍스)뿐이지만 중국 기업은 9곳이나 포진해 있다. 국내 팹리스 가운데 매출 1조원이 넘는 기업은 없다. 1위 업체 실리콘웍스의 연간 매출액은 5000억원을 소폭 상회하는 수준이다. 그 아래로 연간 매출액 1000억원대 팹리스 2~3개사와 수백억원 매출의 기업이 포진해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반도체 산업이 지속 성장하려면 시스템반도체의 비중을 높여야만 한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국가 경제를 위해서도 이 같은 작업은 필요하다. 당장 메모리 시황이 나빠지면 수출이 줄어든다.
팹리스 업계의 상황은 쉽지 않다. 전자신문 조사 결과 지난해 코스닥 상장 팹리스 업체 상위 16갯 가운데 9개사는 전년 대비 매출액과 이익이 30% 이상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속된 적자로 관리종목에 지정된 업체와 더불어 증시 퇴출 위기에 놓인 업체도 있다. 이처럼 팹리스가 어려움을 겪자 칩 생산용 웨이퍼 마스크 제작, 테스트를 맡는 디자인하우스 실적도 급감했다.
업계 관계자는 “전방 고객사 확대를 위해 경쟁국인 중국으로 뛰어들 필요가 있다”면서 “국내 팹리스가 믿고 생산을 맡길 만한 파운드리 생태계 조성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