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8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폼페이우스에 대승한다. 원로원에 의해 `딕타토르 페르페투아`로 선포된다. 이 종신독재관이란 직책은 그가 황제가 되려 한다는 의심을 키운다. 원로원 공화파에게 목숨을 잃는다.
시저의 죽음은 로마에 위기를 불러온다.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권력 투쟁에 전 로마가 휘말린다. 그리스 서안 악티움에서 옥타비아누스는 승리자가 된다. 자신을 트로이에서 유래한 유서 깊은 율리우스 가문의 상속자이자 아들로 삼은 카이사르와는 달리 모든 권력과 특권을 로마 시민에게 돌린다. 독재관 대신 `프린켑스 세나투스`란 이름을 택한다. 실상 로마 제정을 열었지만 제1시민으로 칭했고, 그의 약속처럼 로마는 명분상으로나마 공화정으로 남는다.
제1차 십자군은 1099년 7월 예루살렘에 입성한다. 출발한 지 만 3년 만이었다. 제후들은 로렌 공작 고르드푸아 드 부용을 왕으로 선출한다. `아드보카두스 상크티 세풀크리`, 이 현명한 왕이 선택한 명칭은 `성묘의 헌신적 수호자`였다. 이 도시에 세속의 왕은 용납할 수 없다던 성직자들도 입을 다물었다. 그는 1년 후 죽음을 맞을 때까지 이 이름으로 남는다. 첫 예루살렘왕의 명예는 동생 보두앵의 몫이었지만 그는 중근동에 4개 십자군 국가를 남긴다.
메이크어위시재단 최고경영자(CEO) 수전 러치는 몇 가지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다. 아픈 자녀를 둔 가족을 돕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직원들에게 활력소가 필요했다. 세미나 참석차 디즈니연구소를 방문한다. 직함이 의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듣게 된다. 사무실로 돌아와 31명의 직원들에게 타이틀을 하나씩 지어 보게 한다.
러치 자신은 `요정 대모`라 했다. 명함에도 CEO란 직함과 나란히 적어 두었다. 누군가 이것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물었다. “새 타이틀은 자신의 일이 무엇인지 더 잘 알게 해 주었어요. 자기 역할에 대한 주인의식 같은 것이 됐습니다. 사람들이 그게 뭐냐고 물으면 설명해야 했으니까요.” 자신이 선택한 이름이 틀리지 않다면 그녀는 `도움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꼭 나타나는 사람`이어야 했다.
직함은 누군가 맡은 업무와 책임의 표현이다. 지식, 숙련, 능력과 그 직원이 지녔을 법한 특징까지 나타낸다고 한다. 어떤 기업이든 직함에 별스런 감흥이란 없다. 어느 정도나 승진했고, 부서 업무가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알려 준다. 구글에 가보라. 상급행정보조원(Senior Administrative Assistant) 같은 난감한 직책의 구인 공고도 흔하다.
하지만 어떤 기업에 이것은 창의화 과정이다. 러치가 찾은 디즈니랜드에서 테마파크 직원은 `출연자`, 엔지니어는 `창작하는 엔지니어(imagineer)`로 불렸다. 안내 담당 직원을 `기업 첫 인상 연출가`, 홍보 직원은 `브랜드 전도사`로 각각 칭하는 기업도 있다.
그냥 단순한 분위기 바꾸기 정도일까. 런던비즈니스스쿨의 댄 케이블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케이블 교수와 동료들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 비교했다. 한 그룹에는 그럴싸한 새 이름을 지어 보게 했고, 다른 그룹은 그냥 두었다. 5주가 지나 태도와 생각을 조사했다.
“처음에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새 이름이 일을 더욱 의미 있게 하고, 힘든 감정을 이겨 내게 하고 있었습니다. 심리 안정감도 높아졌고요. 놀라운 결과였습니다.” 만족감은 높아졌고, 직무를 더욱 잘 식별하고 있었다. 저자들은 두 번째 이름을 갖는 이 방법이 창의적으로 일을 다루는 매개체가 된다는 결론을 내린다.
케이블 교수와 동료들은 몇 가지를 제안한다. 자기 일을 살피고 되짚어 보게 하라. 나는 누구에게 어떤 가치를 주고 있는지. 나는 무엇을 잘하고, 다른 사람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그다음은 새 이름 찾아 가기다. 하지만 새 이름 자체가 가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치 있는 것은 의미를 찾아 가는 과정이었다.
케이블 교수가 동료와 발표한 논문 제목처럼 놀랍게도 두 번째 직함은 자신의 일을 돌아보게 하고, 정체성을 확인하게 해 주었다. 자신이 누구고, 무엇을 할 수 있고, 내게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수단이 됐다. CEO로서 힘겨운 일이 `요정 대모`에게는 기꺼운 일이 된 것처럼.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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