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28> 쌓아 가기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28> 쌓아 가기

조지 할버슨은 걱정이 많다. 그가 최고경영자(CEO)로 있는 카이저 퍼머넌트도 다른 병원과 같은 문제가 있었다. 한 가지는 패혈증이었다. 면역력이 약해진 환자에게는 치명타다. 욕창도 마찬가지다. 거동이 힘든 환자가 보살핌을 받지 못한 징후였고, 사망의 원인이었다.

모든 병원처럼 규칙을 고수하게 했다. 연구에도 투자했다. 몇 년이 지난 후 성공했다고 느낄 때쯤 중요한 것은 특별 방식이나 기술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프로토콜은 업계에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결국 그 사이에 나아진 것은 문화였다. 할버슨은 “그것은 문화가 서서히 스며드는 과정이었다”고 회고한다.

할버슨의 카이저 퍼머넌트는 직원 18만명이 있었고, 매년 환자 900만명을 돌보고 있었다. 직원의 57%는 소수인종이었으며, 지역조직 책임자 8명 가운데 6명도 그랬다.

`우리`라는 문화가 필요했다. 하지만 정작 이것 만들기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많은 연구와 저서가 나왔지만 뾰족한 방법은 없어 보였습니다.”

`컬처 맵`의 저자인 인시아드(INSEAD)의 에린 마이어 교수는 조직을 운영하면서 문화의 차이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어떻게 이런 문화를 만들 수 있을까.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할버슨은 몇 가지 조건이 있다고 한다. 조그만 개선이 모여 큰 차이를 만든다는 점을 구성원이 이해해야 한다. 자신이 성과를 높였을 때 조직이 나아질 거라는 믿음도 필요하다. 혁신은 지속해서 상기돼야 한다. 성과는 공유돼야 한다. 할버슨은 6년 동안 매주 금요일 전 직원에게 편지를 썼다. 어떤 진전이 있었고, 어떤 연구를 했으며, 성과는 어땠는지 등을 물으면서 누군가 더 나은 방법을 알게 되면 솔선해 시도하게 했다.

한 지역병원 간호사가 아이디어를 낸다. 인슐린 투여량을 자동으로 계산하는 기기다. 기존 방식을 진부하게 만들 만한 것이었다. 혁신센터에서 모의시험을 해 본다. 구성원 모두가 이런 제안을 할 수 있게 했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

의료서비스 산업은 극심한 품질 평가에 노출돼 있었다. 의료보험제도 탓이기도 했다. 메디케어는 55개 항목으로 의료 품질과 서비스를 평가하고 있었다. 이런 산업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무엇이든 지속 개선해야 했다.

할버슨은 모두가 참여하는 문화가 관건이라고 보았다. `집단 추구(collective pursuit)`라고 부른다. “이것은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처럼 크고 다양성이 큰 조직을 하나로 통합하는 문화 가치를 만드는데 효과가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문화를 만들고, 바꿀 수 있을까. 전력회사인 뉴햄프셔공공서비스에는 여러 문제가 있었다. 주정부 소유였고, 혁신은 더뎠다. 문화를 바꾸는 것이 시급했다. 거창한 계획 대신 두 가지 문제에 집중하기로 한다. 첫째는 정전 후 복구시간 단축하기, 둘째는 유지보수 직원의 생산성 높이기였다. 어찌 보면 사소한 것이었지만 노력은 지속됐다. 이것이 진행되는 동안 역량은 늘었고, 더욱 도전성 강한 과제를 추진할 수 있었다. “이런 성공은 우리가 전략적 지평을 향해 도전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감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손해보험사의 새 CEO가 된 패트릭 오설리번도 마찬가지다. 기업은 큰 손실을 보고 있었다. 성장일변도 전략은 역류가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손해사정관 50명을 불러 제너럴일렉트릭(GE) 방식의 워크아웃을 가졌다. 이것이 성공하자 다음 번 워크아웃을 가졌다. 4년 후 인수합병(M&A) 될 때까지 수익은 1억달러나 호전됐다.

놀랍게도 이들 기업은 문화를 바꾸기 위해 어떤 자원도 매몰시키지 않았다. 경험의 과정을 중시했고, 역량이 늘어나는 것을 기다려 다음 단계로 진행했다. 성공을 통한 학습을 최대한 활용했다. 이것은 다음 단계에 투입됐다. 프란시스 섀퍼가 말하는 것도 동일하다. 한두 개부터 시작해 성공하라. 성공의 경험을 다음 단계에 적용하라. 점진 개선을 통해 어느 날 문득 너무나도 새로운 문화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것…. 섀퍼는 기고문 제목을 `문화를 바꾸려면 그런 노력부터 멈추라`고 쓴다.

문화 만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섀퍼는 구글에서 `조직문화 변화 프로그램`으로 검색하니 2억7300만건의 정보가 있더라고 말한다. “문화를 바꾸자”는 것처럼 기업에 흔한 문구도 없다. 한 간호사의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다룬 카이저 퍼머넌트나 사소한 몇 가지에서 시작한 사례들이 더 가치가 있어 보이는 것은 이런 이유 탓 아닐까.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