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말도 못합니다.” 지난해 말 호기롭게 중국 진출을 장담하던 중소기업인 K가 전한 말이다. 흠 잡을 곳 없는 디자인에 한류 붐까지 타고 있는, 이른바 잘나가는 패션 소품을 만들고 있는 K다. 그러던 그가 중국에서 고전하고 있는 이유는 모조품 `짝퉁` 때문이었다.
K가 짝퉁을 경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상표권의 중요성은 이미 수년 전 미국에 매장을 오픈할 때부터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K는 중국 진출에 앞서 준비를 단단히 했다. 상표권이야 당연히 등록을 마쳤고, 중국 오픈마켓에서 팔리고 있는 모조품도 1만개 가까이 삭제했다. 하지만 끊이지 않는 도용과 소송에 진이 빠진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짝퉁에 가로막혀 중국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이 비단 K만은 아닐 것이다. 짝퉁은 브랜드와 같은 상표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특허, 실용실안, 디자인 등 지식재산권 전반에 걸쳐 중소기업은 중국발(發) 모조품과 힘겨운 전쟁을 치르고 있다. 특허청에 따르면 수출기업이 치른 해외 지재권 분쟁의 36%는 중국에서 발생했고, 분쟁을 경험한 기업은 58%가 중소기업이다.
수법도 기상천외하다. 중국에 출시하지도 않은 상표를 미리 등록해 돈부터 요구하거나 당신네 회사가 우리 특허를 침해했다며 경고장부터 발송, 위협으로 일관하는 사례는 고전 중 고전이다. 또 다른 중소기업인 S는 중국인 브로커가 전시회에서 으레 나눠 주는 명함을 수집해 모조리 상표 등록을 해 놓았다며 허탈해했다.
최근에는 중국 경제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우리 기업이 되레 중국 기업의 지재권을 침해하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얼마 전 중국의 화웨이가 한국의 삼성을 상대로 특허소송을 제기한 것이 대표 사례다. 일각에선 승소 가능성이 거의 없는 노이즈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숨겨진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짝퉁이 아닌 `진퉁`으로 변하고 있는 중국의 거침없는 자신감을 보여 주는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마냥 주저앉을 수는 없다. 여전히 중국은 비행기로 고작 2시간 거리에 있는 세계 최대 시장이다. 여기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관세는 낮아지고, 한류로 한국 상품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다. 세상 어느 국가도 우리나라보다 중국과 지리, 문화, 경제 관계로 가까운 나라는 없다.
중국의 지재권 인식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한·중 FTA 등 중국의 국제무대 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중국도 `짝퉁대국`이란 오명을 벗고 국제 규범에 발맞춰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특허법에 해당하는 전리법(專利法) 등 관련 규정의 정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2014년에는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에 지재권 전문 1심법원을 설립한 데 이어 2015년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고 인터넷 쇼핑몰에 모조품 관리 책임을 부과하는 등 선진국 수준의 지재권 보호체계를 갖추고 있다. 적나라한 중국 기업 편들기도 수그러들고 있다. 2006~2013년 발생한 지재권 분쟁으로 인해 외국 원고가 받은 배상금이 중국 원고가 받은 배상금보다 더 많다고 한다.
다시 K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지난해 중국에서 그렇게 지재권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K는 올해 초 마음을 다잡고 칭다오에 새로운 매장을 열었다. 비록 중국이 쉬운 시장은 아니지만 그는 앞으로도 중국 시장을 끈질기게 두드릴 계획이라고 한다. 한국 경제를 지탱해 오던 내수와 수출, 기업과 가계 모두가 유래 없는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 지금 세계 최대의 내수시장인 중국으로의 진출은 성장을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K는 말한다.
지레 겁먹을 필요도, 좌절할 필요도 없다. `태산이 높다 한들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는 말처럼 중국의 벽이 높다 한들 넘지 못할 벽이겠는가. 중소기업인 K의 중국 시장 도전기는 이제 1막이 끝났을 뿐이다.
곽기영 중소기업중앙회 지식재산위원장 kykwak@boku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