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물고 있는 국내 증권사를 대형화하고 글로벌 투자은행(IB)으로 육성하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우선 내년부터 자기자본 4조원이 넘는 대형 증권사는 어음을 발행해 손쉽게 대규모 자금을 조달해 기업에 빌려줄 수 있게 된다. 또 자기자본 8조원이 넘는 초대형 증권사는 종합투자계좌(IMA:Investment Management Account)로 일반 고객 돈을 모아 기업대출 업무를 할 수 있게 된다.
2일 금융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및 금융투자업 규정 개정 등 후속조치를 거쳐 오는 2017년 2분기 본격적으로 시행한다.
기존 자기자본 3조원 이상 종합금융투자사업자가 자기자본을 일정 수준으로 늘릴 때마다 새로운 업무를 추가해 주기로 했다. 자기자본 수준은 3조원 이상~4조원 미만, 4조원 이상~8조원 미만, 8조원 이상 3단계로 분류한다.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증권사에는 발행어음과 레버리지 규제 완화를 적용하고 8조원 이상인 초대형 증권사에는 유일하게 원금을 보장해주는 종합금융투자계좌 운영과 부동산 담보신탁 업무 등이 추가로 허용된다.
김태현 금융위 자본시장국장은 “우리 경제가 활력을 회복하고 성장동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투자은행 중심의 종합 기업금융서비스 확대가 필요하다”며 초대형 투자은행 육성 배경을 설명했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에는 기업금융업무 활성화를 위해 별도 순자본비율체계(NCR-II)가 적용된다.
현재는 만기가 긴 대출자산은 신용등급에 관계없이 영업용순자본에서 채권액 전체(100%)를 차감해 금융투자사들의 건전성 기준인 NCR 비율이 크게 하락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대출자산 신용등급에 따라 채권액의 일부(AAA등급은 1.6%, BBB 8%)만을 영업용순자본에서 차감하기로 했다.
신용공여 한도도 늘려준다. 지금은 기업신용공여를 여타 신용공여와 합산해 자기자본 100% 이내로 제한하고 있지만 앞으로 종합금융투자사업자는 기업 신용공여를 별도로 자기자본 100%로 확대 추진할 수 있다. 또 NCR-II 도입과 병행해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리스크 관리를 위해 새로운 건전성 관리장치를 마련한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들이 기업금융 재원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도록 발행어음과 종합투자계좌 등 새로운 자금조달 수단도 허용한다.
발행어음(만기 1년 이내)은 레버리지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되, 기업금융의무비율(최소 50% 이상)을 둬 기업금융 확대에 우선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다만 투자자에 대한 발행인의 지급여력이 안정적으로 확보될 수 있도록 발행총량은 제한한다. 또 과거 종합금융회사가 발행하던 발행어음과 달리 예금보험공사에 의한 예금자 보호는 제공되지 않는다.
발행어음과 함께 허용되는 종합투자계좌는 고객으로부터 예탁받은 금전을 통합해 운용하고 그 수익을 고객에게 지급하는 계좌다. 종합투자계좌는 레버리지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고 기업금융 의무비율(예:최소 70% 이상)을 설정하는 것은 발행어음과 유사하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가 원금 지급의무를 지고 운용수익은 사전 약정에 따라 투자자에게 배분된다.
금융당국은 발행어음과 종합투자계좌를 허용하되, 운용의 적절성을 확보하기 위해 별도 계정으로 관리하고 업무보고서 등을 통해 운용 상황을 금감원에 보고하게 하는 등 감독을 강화한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에는 다수 거래 상대방에 대해 동시에 이뤄지는 비상장주식 매매·중개 업무도 허용한다. 성장잠재력이 큰 비상장 중소기업 발굴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기업고객과 현물환 매매 업무를 허용하는 등 기업금융 관련 외국환 업무도 확대한다. 현재 금융투자업자는 금융투자업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대고객 환전업무는 하지 못하지만 이 제한을 풀어주는 것이다.
은행에만 겸업이 허용된 부동산담보신탁 업무도 종합금융투자사업자에 일부 문호를 개방한다. 기업 자금공급 등에 있어 보다 종합적인 기업금융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해외 투자, 해외 M&A 중개·주선 역량을 강화하는 등 사업영역의 글로벌화를 지원하기 위해 정책금융기관, 국부펀드 등과 협력체계도 구축한다.
증권업계는 각종 혜택을 받으면서 기업 규모를 키우고 사업 영역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이 이번에 내놓은 초대형 IB 육성책을 호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번 육성책이 발표되기 전부터 증권사들은 경쟁적으로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대표적으로 신한금융투자가 지난달 21일 이사회에서 5000억원대 유상증자를 결정해 자기자본 3조원 진입을 앞뒀다.
올 3월 말 기준으로 통합 미래에셋증권(6조7000억원)과 NH투자증권(4조5000억원)을 제외한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자기자본은 KB와 현대증권 합병사가 3조8000억원, 삼성증권 3조4000억원, 한국투자증권 3조2000억원 수준이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선정기준이 4조원과 8조원으로 나뉨에 따라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등은 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하이투자증권 인수전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금융위는 “이번 대책으로 초대형 투자은행이 육성되면 자본시장의 실물경제 지원 기능이 강화되고 금융투자업 자체의 성장동력이 확보될 것”이라고 밝혔다.
< 자기자본 수준별 인센티브 제공 방안>
<아시아지역 주요증권사 자기자본 현황 (자료:금융위원회)>
이성민 코스피 전문기자 smlee@etnews.com,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