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통신업체 버라이즌커뮤니케이션스는 지난달 25일(현지시각) 야후의 핵심사업인 인터넷 포털 사업을 48억달러(5조5000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버라이즌은 야후 인터넷 사업을 인수한 뒤 작년에 사들인 AOL과 결합해 디지털미디어 사업을 확대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런 구상이 실행에 옮겨지면 버라이즌 산하 AOL-야후 결합 기업이 페이스북, 구글 등과 온라인 광고 사업을 놓고 경쟁하게 된다. 동영상 서비스와 온라인광고를 차세대 성장 엔진으로 밀고 있는 버라이즌의 청사진이 구체화되는 것이다.
버라이즌커뮤니케이션스는 미국을 대표하는 통신 회사다. 2000년대 들어 AT&T를 제치고 미국 1위 통신 기업으로 떠올랐다. 이 회사는 1983년 벨애틀랜틱(Bell Atlantic)으로 시작해 2000년 벨애틀랜틱과 장거리전화 전문 통신회사인 GTE(General Telephone & Electronics Corporation)가 합병하면서 공식 출범했다.
벨애틀랜틱은 20세기 미국 통신업계를 장악했던 거대기업 AT&T에서 독립한 회사다. 1983년 통신업계 독과점을 막기 위해 AT&T로부터 벨애틀랜틱, 나이넥스, 벨사우스 등 7개 회사가 독립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 통신업체가 이동통신 사업에 뛰어들면서 과잉 경쟁이 시작됐다. 막대한 광고비가 사용됐고 공짜 휴대전화기와 무료 서비스가 남발되면서 통신회사는 경영난에 빠졌다. 이를 계기로 미국 통신회사 사이에서 인수합병(M&A) 붐이 일어났다.
벨애틀랜틱은 2000년 나이넥스와 GTE를 합병하면서 버라이즌커뮤니케이션스가 공식 출범했다. 2005년 MCI를 85억달러에 인수하는 등 몇 차례 더 합병을 하며 규모를 키워 AT&T를 누르고 미국 최대 통신업체 자리에 올랐다.
자회사 버라이즌 와이어리스(Verizon Wireless)는 미국에서 가장 큰 이동통신회사다. 버라이즌 커뮤니케이션스가 55%, 보다폰이 45%를 투자해 2000년 설립됐다. 이후 2013년 버라이즌커뮤니케이션스는 보다폰이 소유하고 있던 이 회사 지분을 1300억달러에 모두 매입했다. 21세기 들어 가장 큰 규모 인수합병(M&A)이었다.
버라이즌은 이어 지난해 44억달러를 들여 AOL을 인수하는 등 갈수록 수익성이 악화하는 이동통신 사업 분야 대신 온라인·소프트웨어 분야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이제 물리적인 통신망은 별로 큰 경쟁우위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버라이즌이 인수한 야후는 한 때 시가총액 1250억달러를 웃돌았던 대표 인터넷 기업이었다. 하지만 닷컴 붐 붕괴와 구글과 페이스북 등 라이벌 기업 등장으로 급격히 몰락했다. 야후는 미국에서만 월간 방문자 2억명을 웃도는 등 인터넷 부문에선 여전히 매력적이다. 버라이즌은 AOL과 야후를 결합해 플랫폼 경쟁력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버라이즌은 야후를 인수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일주일 만에 새 기업 인수 소식을 발표했다. 차량 위치 등을 추적하는 소프트웨어를 제조하는 플리트매틱스(Fleetmatics)를 24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 소재한 이 회사는 운행 차량의 연료 사용량, 속도, 주행거리 정보를 수집해 모바일 기기로 보여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기업이다. 전문가들은 버라이즌이 사물인터넷(IoT) 부문을 강화하려는 포석으로 분석했다.
한 때 통신서비스 분야 제국을 건설했던 버라이즌이 온라인과 소프트웨어, IoT부문에 과감한 투자로 붕괴하는 제국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지 시장은 주목하고 있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