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호 블루홀 PD는 한국 게임사에 이름을 남긴 이 중 하나다. 1995년 한국 최초 상용 텍스트머드게임(텍스트로 진행하는 RPG) `단군의 땅`을 개발한 주역이다.
카이스트 재학 시절 게임개발에 손을 댔고 이후 그의 이력은 `아크메이지` 등으로 이어졌다.
김 PD는 “당시 카이스트는 전국에서 인터넷이 깔린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라며 “인터넷을 가지고 놀다가 자연스럽게 게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단군의 땅은 당시 한국 시장에 센세이셔날 한 상품이었다. 분당 사용료를 받는 게임으로 월 수천만원 매출을 올린 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가 차기작으로 참여한 웹게임 아크메이지도 독특한 길을 걸었다. 이용자가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는 게임이었다.
김 PD는 “돌이켜봐도 실험적이고 괜찮았던 게임”이라며 “발상은 좋았는데 세계가 멸망할 때마다 이용자가 30%씩 빠지더라”며 웃었다.
미국에서 인터넷 광고를 매출 삼아 나름의 성과를 올리던 아크메이지는 닷컴버블이 붕괴되며 유지되지 못했다.
김 PD는 이후 SK C&C에서 가상현실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인터넷 공간에 가상의 세계를 만든다는 것은 게임과 같았다.
당시 유행하던 `세컨라이프` 등에서 영감을 얻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오너의 관심도 컸다. 한국의 주요 도시를 그대로 구현하는 것이 목표였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먼저 해보고 싶어 하는 성미가 그를 일에 몰두하게 했다.
프로토타입까지 나왔지만 대기업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는 프로젝트가 유지되기는 어려웠다. 수익모델을 찾지 못하자 결국 지원이 끊겼다.
김PD는 “지금 VR이 각광받는 것을 보면 지지받을 수 있는 프로젝트였지만 당시에는 이를 증명할 길이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김 PD는 올해로 게임, 정확히 인터넷 공간에서 세상을 창조하는 일에 20년째 투신했다. 그는 국내 게임업계가 “다시 이노베이션(기술혁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게임 생태계가 편중된 모습을 보이고 한계를 느끼는 것은 예전만큼 혁신에 투자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김 PD는 현재 블루홀에서 가상현실(VR) 프로젝트 `제로`를 총괄한다.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를 쓰고 판타지 세계에서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지금껏 VR이 보여주지 못했던 고퀄리티 공간을 만들고 있다. 하드웨어가 받쳐주는 한에서 최상의 경험을 이용자에게 전달하려 한다. 그는 게임을 “목적과 실행 그리고 피드백의 사이클”이라고 정의했다.
김 PD는 “VR은 장기적 게임시장 주류가 될 수 있다”며 “하드웨어 발전에 따라 게이밍 경험이 빠르게 발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시소 게임 전문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