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글로벌 M&A 빗장 풀렸다

지난 8일 세계 최대 소매점인 월마트가 e커머스 스타트업 제트닷컴을 33억달러(3조7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 미국을 깜짝 놀라게 했다. 서비스를 시작한지 1년밖에 안 된 스타트업에 3조원이 넘는 거액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제트닷컴은 `온라인의 코스트코`라 불리며 서비스 시작 이전에 이미 2억2500만달러를 투자받을 정도로 주목받은 기업이다.

월마트는 제트닷컴 인수로 온라인 상거래에서 아마존과 격차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 기조에 들어서면서 굵직굵직한 인수합병(M&A)이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산업의 빠른 변화 속도에 맞추기 위해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은 전방위 M&A로 시장 주도권 유지와 변신을 지속하고 있다.

[이슈분석]글로벌 M&A 빗장 풀렸다

◇차세대 성장 동력에 아낌없이 투자

올해에도 IT 업계는 사업 다각화와 주력사업 강화를 위한 M&A를 적극 시도하고 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인텔,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 지난해에 M&A를 적극 시도한 기업은 여전히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클라우드서비스,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등 차세대 성장 동력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들 업체는 스마트폰과 PC 기반에서 벗어나 플랫폼 다각화를 위한 투자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각 기업이 정체된 주력 사업의 반전을 노리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다른 분야의 전문 업체를 인수, 기존 기업의 체질을 바꾸고 산업 간 시너지를 이뤄 보려는 시도다.

올해 글로벌 M&A 시장 규모는 지난해와 비슷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M&A 거래 대금은 5조달러를 돌파했다. 2014년 3조6700억달러 대비 38% 증가했다. 델이 EMC를 670억달러에 인수한 것이 대표 사례다. 올해에도 폭스콘의 샤프 인수, 소프트뱅크의 ARM 인수 등이 있지만 단일 매각액은 지난해에 미치지 못한다.

◇실리콘밸리 기업은 스타트업, 아시아는 대형 업체 인수

미국과 아시아 기업의 M&A 형태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실리콘밸리 IT 기업의 M&A는 주로 스타트업에 맞춰졌다. 회사 규모는 작지만 기술력을 갖췄다고 평가되는 기업에 투자자금이 몰렸다. AI, 증강현실(AR), VR, IoT 분야 기업을 사들이거나 투자하면서 이들 분야 우수 벤처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실리콘밸리 기업이 이런 행보를 보이는 것은 현재 주력인 스마트폰이나 반도체, 검색 시장이 이미 성숙해서 더 먹을 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될성부른 신생 기업을 재빨리 M&A, 미래 시장 선점 효과를 노리고 있다.

반면에 중국과 일본 기업은 궤도에 오른 기업 인수에 중점을 뒀다. 제너럴일렉트릭(GE) 가전 사업을 인수한 하이얼, 샤프를 인수한 폭스콘, 도시바 가전부문과 산업용 로봇업체 쿠카를 인수한 메이디, ARM홀딩스를 인수한 소프트뱅크 등이 대표 사례다. 피인수 기업의 브랜드와 마케팅 파워를 이용, 단숨에 시장을 선도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영원한 1위는 없다

올해 가장 주목 받은 M&A는 인터넷 포털 야후와 독일 산업용 로봇업체 쿠카의 매각이다.

한때 인터넷 업계의 공룡으로 불리던 야후는 시장 흐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라이벌 등장으로 퇴조하면서 매각 운명을 맞았다. 야후는 독자 생존을 모색했지만 한계를 넘지 못하고 결국 통신회사 버라이즌에 48억달러에 매각됐다.

100년 넘은 산업용 로봇업체 쿠카는 세계 4대 산업용 로봇 업체이자 독일의 자존심이다. 중국 가전 업체 메이디가 인수를 제의하자 독일과 유럽에서는 반대 여론이 들끓었지만 결국 중국 자본의 공세에 무릎을 꿇었다.

애플 아이폰을 주문 생산하면서 커 온 폭스콘이 일본 샤프를 인수한 것이나 중국 차량호출 업체 디디추싱이 글로벌 1위 업체인 우버의 중국법인(우버차이나)을 인수한 것도 뜨거운 이슈다. IT 업계에는 영원한 1위도 꼴찌도 없다. 한 눈 팔면 누구든, 언제나 퇴출당할 수 있음을 보여 준 대표 사례들이다.

◇인공지능에 자금 몰린다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핫한 M&A 분야는 AI다. 글로벌 IT 업체의 AI 스타트업 구매 열풍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인텔은 딥러닝 분야 스타트업 너바나시스템스를 3억5000만달러에 매입했다. 애플은 개발자와 데이터 분석자를 위한 머신러닝 플랫폼 업체 투리를 약 2억달러에 인수했다. 이에 앞서 세일즈포스의 메타마인드, 아마존의 오비어스, 트위터의 매직포니, MS의 완드랩스, 구글의 우드톡스 등 인수도 AI M&A로 주목받았다.

글로벌 IT 업체가 AI M&A에 적극인 이유는 분명하다. AI는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는 자율주행차, 로봇, IoT 등의 두뇌다. AI를 선점하면 신성장 동력 사업을 모두 아우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M&A 집중 대상이 되고 있다.

결국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과 시장 변화를 혼자 힘으로 따라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글로벌 공룡 기업은 M&A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 IT 기업은 대형 M&A에 미지근한 모습을 보인다. 삼성전자가 조이언트와 데이코 등을 인수했지만 글로벌 IT 업체의 대형 M&A와 비교하기 어렵다. 삼성전자의 중국 전기자동차 업체 비야디(BYD)에 대한 투자도 5100억원에 그쳤다.

올해 글로벌 IT M&A는 사업 다각화나 주력 산업, 융합을 위한 인수가 중심이 되고 있다. 이는 경쟁력 있는 기술이나 성장하는 IT 기업의 프리미엄을 더욱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전망이다. 높은 프리미엄을 받고 있는 기술력 있는 글로벌 성장 IT 기업에 대한 관심이 좀 더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