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기업이 합법적 탈세를 끝낼 때가 왔다.”
유럽연합(EU)이 미국 애플에 130억유로(약 16조2000억원) 세금추징결정을 내린 후 당사자인 애플과 아일랜드는 물론 미국 정부도 EU결정에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그동안 다국적기업이 너무 쉽게 유럽에서 세금을 피해왔다며 글로벌 공조 세제 개혁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일랜드는 법인세율이 12.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 EU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애플이 적용받은 실질 세율은 2003년 1%였고, 2014년에는 0.005%에 불과했다. 애플은 아일랜드에 자회사를 둬 유럽 대륙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아일랜드로 이전해 극히 적은 세금만 내고 기업활동을 했다는 EU 판단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방식의 글로벌 기업 세금회피가 설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토마스 쿡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이번 결정으로 많은 글로벌 기업이 공격을 받을 전망”이라며 “이같은 세금회피가 지속가능한 모델이 아니라는 것이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유럽집행위원회 경쟁당국은 구글과 맥도날드 등이 아일랜드에 회사를 세워 세금 납부를 회피했다며 조사를 진행 중이다.
또 룩셈부르크가 2003년 아마존 유럽 본사를 유치하면서 아마존에 과도하게 낮은 세율을 부과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아마존이 룩셈부르크 정부로부터 EU 법률 상 불법적인 조세특혜를 받았다면 약 4억유로 세금을 추징당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에서 지난 수년간 여야 간 이견으로 진전을 보지 못했던 세제 개혁 논의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시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미국 대기업에 적용되는 법인세율은 35%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에 애플 등 많은 기업이 해외에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면서도 자국으로 송금하지 않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이렇게 해외에서 묶인 돈이 2조달러가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법인세율을 14%로 낮추자고 제안하고 있고 야당인 공화당은 올해 8.75%를 제시했다. 법인세율은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케빈 브래디 미 하원 세입세출위원장은 “다른 나라가 미국 기업에 수십억달러 세금을 청구하기 전에 미국 정치권이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나서야 한다”며 세제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갈길은 요원하다. EU 결정에 애플과 아일랜드는 물론 미국 정부도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팀 쿡 애플 CEO는 유럽 애플 커뮤니티에 보낸 공개서한에서 “EU 집행위원회 주장은 사실과 법에 기반을 두지 않았다”며 “이번 결정으로 유럽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심대하고 유해한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집행위원회 논리대로라면 아일랜드와 유럽 전역 모든 회사가 갑자기 있지도 않은 법에 따라 세금을 내야 하는 위험에 내몰린다”며 향후 유럽 투자에 악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백악관도 EU 결정이 “일방적인 접근”이라고 비판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애플이 세금을 추징당한다면 미국 기업에 불공정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며 “국제사회에서 공정한 조세 시스템을 만들려는 미국과 유럽의 공조가 약해질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달 중순 마이클 프로먼 미 무역대표(USTR)가 유럽을 방문하는 길에 협의를 통해 개선이 이뤄지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