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과기입국(科技立國)` 깃발을 다시 내걸자

과학기술은 곧 국가 경쟁력이다. `한강의 기적`도 `과기입국(科技立國)` 기치 위에서 가능했다. 정부와 기업은 물론 선대 과기인들이 과학기술 개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한 덕분에 우리는 전쟁의 화마가 휩쓸고 간 잿더미 위에서도 이렇게 빨리 일어설 수 있었다.

한때 `科技立國`이라고 쓴 편액이 유행했다.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은 물론 학교와 기업체 사무실 벽에서 힘 있는 필체로 쓴 액자를 자주 볼 수 있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과학입국 기술자립(科學立國 技術自立)`이라고 쓴 작품이 남아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바로 `과기입국` 주창자였다.

박근혜 대통령도 수차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달에는 제2차 과학기술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누가 얼마나 빨리 국가 차원의 혁신 기술을 개발하느냐에 국가 미래가 달려 있다”면서 “경쟁력 확보를 위해 범국가 차원으로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급변하는 시대에 대비한 국가 전략 프로젝트도 발표했다. “4차 산업혁명 대변혁이 일고 있는 지금 시기를 놓치면 따라가기 어렵다”면서 “여기에 국가 경쟁력과 청년 일자리가 달려 있다는 생각에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며 조바심도 내비쳤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르다. 오히려 과학기술이 정책의 중심에서 계속 밀려나는 모양새다.

현재의 과학기술 분야 정부 부처 위상이 잘 말해 준다. 과학기술 관련 업무는 1962년 경제기획원 내 기술관리국에서 담당하다가 제2차 경제개발계획 촉진과 함께 1967년 과학기술처로 확대 개편됐다. 이후 1998년 정부조직 개편 때 과학기술부로 승격됐다. 과학기술부는 한때 장관이 부총리를 겸할 정도로 위상이 높았다.

하지만 2008년 정부조직법을 개정하면서 과학기술부 조직이 쪼개진다. 일부는 지식경제부, 일부는 교육인적자원부와 통합해 교육과학기술부가 된다. 이때부터 과학기술 분야가 위축되기 시작했다.

2013년 다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와 합쳐 창조경제를 이끄는 미래창조과학부로 거듭났다. 여전히 반쪽짜리 부처다. 더구나 ICT 분야가 득세하면서 점점 더 뒤로 밀려나는 모습이다.

여파는 지방자치단체로 이어졌다. 최근 경기도가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은 지난 2010년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설립됐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국 지자체의 롤 모델로 인식되면서 부러움을 샀다.

경기도의 경기과학기술진흥원 폐지 결정은 조직의 효율성이나 필요성, 당위성 등은 철저하게 무시한 채 오로지 `정무 판단`으로 이뤄진 결정이다. 도지사와 도의회 여야 의원들이 `연정`을 볼모로 밀어붙인 결과물이다. 그만큼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인식이 낮아졌다.

무엇보다 이로 인해 경기도는 앞으로 과기인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도내 기업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한 번 무너진 탑은 새로 쌓기 어렵다. 과학기술 위상이 더 무너져 내리기 전에 과기입국 깃발을 다시 내걸어야 한다.

대전=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