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1년 반도체 산업계가 18인치(450㎜) 웨이퍼 도입 논의가 한창일 때 일본은 대구경화가 아닌 소구경화에 집중했다. 그 결과물이 최근 나왔다.
일본의 요코 솔루션 서비스는 올 상반기에 `미니멀 팹` 데모 연구실을 오픈했다. 미니멀 팹은 지름이 짧은 소형 웨이퍼를 활용, 반도체 시제품 생산에 소요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고안됐다. 0.5인치(12.5㎜) 웨이퍼를 활용한다. 디자인 룰은 0.5~1마이크로미터(㎛)다. 지금 파운드리 양산 라인에서 활용하는 200~300㎜ 웨이퍼나 수십 나노미터 디자인 룰과 비교하면 형편없는 사양이다. 하지만 시제품 생산에 드는 비용은 10분의 1로 적다. 통상 양산 라인에서 시제품을 하나 뽑으려면 억 단위 비용이 소요된다. 미니멀 팹 솔루션을 활용하면 1000만원이나 그 이하 가격으로 시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반도체 스타트업 진입 장벽이 크게 낮아진다.
최근 국내 반도체 대기업과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대규모 멀티프로젝트웨이퍼(MPW) 서비스 논의를 활발히 벌이고 있다. MPW 서비스를 활용하면 웨이퍼 한 장에 다양한 반도체 시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10개 기업이 웨이퍼 한 장에서 각기 다른 시제품을 뽑을 수 있다. 미니멀 팹 만큼은 아니지만 시제품 생산 비용은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MPW는 반도체 기업 입장에선 돈 되는 서비스가 아니다. 그러나 국내 생태계를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장기 투자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창업 생태계가 활성화된 이유는 진입 장벽이 낮기 때문이다. 컴퓨터 한 대와 프로그래밍 실력, 아이디어가 있다면 누구나 창업을 한다. 반도체도 진입 장벽을 낮추면 지금보다 창업이 많아질 수 있다. 부가가치 측면에선 온라인·오프라인 중계업이 대다수인 앱 생태계보다 긍정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반도체 창업 생태계가 강화되고 성공 사례가 다수 나오면 대기업에 재직한 기술자가 중국으로 넘어갈 이유가 없어진다. 반도체는 우리나라 수출 품목 1위인 핵심 산업이다. 정부와 산업계, 학계 중심으로 이런 창업 지원 논의가 하루라도 빨리 이뤄져야 한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