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지평 넓히는 자본시장

다음 달이면 한국거래소 스타트업 지원 시장인 KSM(KRX start-up market)의 문이 열린다. 높은 문턱으로 여겨 온 자본시장이 스타트업까지 넓어진 셈이다.

현행법상 KSM은 장외시장이다. 거래소 내부에 개설되는 거래소 시장이지만 코넥스나 코스닥과 달리 거래소가 직접 상장 심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래소는 크라우드펀딩 성공 기업 또는 창조경제혁신센터, 정책금융기관이 추천한 기업을 KSM에 올릴 예정이다.

정부는 KSM 개설이 중소·벤처기업 자금 조달 채널과 투자 방식이 다양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7월 창업·벤처기업 투자 전용 사모펀드(PEF) 설립 근거를 마련해 벤처캐피털(VC)에 준하는 세제 혜택을 주기로 한 것도 자본시장 범위를 창업 초기 기업까지 넓히기 위해서다. 적자기업 상장을 허용하는 `테슬라 요건`을 신설하는 것도 성장 가능성이 짙은 기업을 더욱 적극 발굴하기 위한 목적이다.

시장 참여자의 범위도 넓어질 전망이다. 소액 크라우드펀딩 투자자, 엔젤투자자 등 초기 투자자들이 KSM에 올릴 기업을 발굴하는 셈이다. 증권사가 전담하던 유망 기업 발굴 업무를 초기 투자자도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대감 높아진 크라우드펀딩 중개업체

가장 기대가 큰 곳은 크라우드펀딩 중개업체다. 거래소는 KSM 출범과 동시에 KSM 등록 기업에 투자하는 크라우드펀딩 매칭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거래소를 중심으로 중소기업 특화 증권사가 출자하는 형태로 펀드를 조성한다. 조성된 금액은 크라우드펀딩을 받은 기업에 대한 후속 투자에 주로 쓰일 예정이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2월 제도 시행 이후 4일 현재까지 크라우드펀딩 발행 건수는 총 77건, 금액은 127억6878만원이다. 업계에서는 KSM이 크라우드펀딩 기업 후속 투자와 회수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우름플래닛, 모션블루 같은 후속 투자가 활발히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다.

금융위 관계자는 “아직까지 제도 시행 초반인 만큼 후속 투자 공식 사례가 많이 등장하지는 않았다”면서 “추후 KSM 시행과 함께 성공 기업에 대한 후속 투자 프로그램과 기업설명회(IR) 등 지원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시장은 커지지만 사고 팔 매물은 부족

문제는 시장 참여자는 늘고 있지만 정작 투자할 기업은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VC업계에서는 이미 조성한 펀드도 소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국내 벤처 투자를 이끌어 온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도 이제는 중국 기업의 공세와 대기업의 무분별한 확장으로 투자가 꺼려지는 상황”이라면서 “바이오나 의료같이 후발 주자가 쉽게 따라올 수 없는 분야가 아니라면 성공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초기 단계의 크라우드펀딩 성공 기업에서 추가 성장 동력을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바이오·의료 벤처기업에는 총 3170억원에 이르는 돈이 몰렸지만 업력 3년 이하 초기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는 385억원 수준에 그쳤다. 실제로 올해 들어 크라우드펀딩에 성공한 77개 업체의 약 80%는 ICT 서비스 업종이 차지한다.

업계에서는 산업정책과 금융정책 간 `엇박자`를 투자자와 창업기업 수요가 맞지 않는 주된 원인으로 꼽고 있다.

홍재근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벤처 생태계에 충분한 돈이 돌고 제도권 금융사도 벤처기업 투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작 피투자 기업 성과 분석은 미미하다”면서 “정책 차원의 관심과 대규모 투자가 수익률을 위한 투자인지 초기 기업 육성을 위한 지원인지에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기 특화 증권사 관계자도 “막상 시장을 찾았지만 먹거리가 없다면 앞으로 그 시장에는 다시 발을 들이지 않게 될 것”이라면서 “시장 참여자를 늘리고 시장을 넓히기 위해 시장에 투자할 만한 기업을 늘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