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노트7 발화 사건을 보면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다.
삼성전자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갤럭시 시리즈 가운데 가장 매력 강한 스마트폰이 채 피기도 전에 시들었다. 아이폰 마니아 마음까지 뒤흔들었지만 배터리 발화 이슈에 모든 게 날아갔다. 혁신 없는 아이폰7만 반사이익을 봤다. 이 여파로 삼성전자 3분기 영업이익은 당초 시장 전망치보다 1조원가량 줄었다. 급기야 갤노트7 생산 일시 중단 소식까지 전해졌다.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세계 1위 휴대폰 기업의 최대 위기다. 소재·부품 후방기업들의 타격도 불가피하다.
리콜 과정에서 아쉬운 대목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배터리 교체 방법이다. 삼성전자는 문제가 된 삼성SDI 배터리 대신 중국 ATL 배터리로 전량 교체했다. ATL은 갤노트7 리콜 악재 속 최대 수혜자가 됐다. 이를 지켜보면서 의문이 들었다. 왜 물 건너 중국 업체가 구원투수가 돼야 하는 걸까. 한국에는 삼성SDI와 함께 세계 배터리 시장을 선도하는 LG화학이 있지 않은가. 집에 갑자기 쌀이 떨어지면 이웃집에서 빌린다. 굳이 먼 친척을 찾지 않는다. 그런데 삼성이 중국 ATL 배터리로 교체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산업계는 물론 일반인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삼성전자는 왜 가까운 LG화학을 두고 멀리 중국 업체에 손을 내밀었을까? 이런 질문에 피식 웃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조롱할 수 있다. 누가 경쟁자의 배를 불려 주는 선택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팩트만 놓고 보자. 중국 ATL은 삼성SDI 경쟁자가 아닌가. 애플은 라이벌인 삼성전자로부터 가장 많은 부품을 구매하지 않는가.
갤노트7 배터리 일부를 공급한 ATL이 가장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현실 문제가 고려됐을 것이다. 새 제품 공급이 급한 삼성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면 LG화학이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면 과연 삼성이 LG 제품을 채용했을까. 아마도 99.9% 아닐 것이다.
삼성뿐만 아니다. LG가 비슷한 일을 당했다 하더라도 삼성을 제쳐 두고 해외 업체를 찾지 않았을까. 우리 산업계에는 언제부터인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정서가 지배한다. 삼성 협력사, LG 협력사, 하이닉스 협력사 등으로 대오가 갈렸다. 대오에서 이탈하면 바로 적이 된다. 모두 알면서도 내놓고 이야기하지 않는 우리 산업계의 일그러진 단면이다. 한때 국내 시장만을 놓고 죽기 살기로 싸우던 낡은 프레임이 유물로 남아 있다. 폐해는 심각하다. 중소 협력사는 글로벌 기업이 수두룩한 한국에서 반쪽짜리 내수 기업으로 전락했다. 대기업은 좋은 부품과 장비를 두고도 `우리 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싼 돈을 들여 수입한다.
바야흐로 협업시대다. 미국, 일본, 중국 기업은 자국 경쟁자와도 서슴없이 손을 잡는다. 우리의 적대성 경쟁 문화도 타파돼야 한다. 일등 기업인 삼성이 솔선수범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삼성전자는 이미 레벨이 달라졌다. 진정한 글로벌 넘버원 기업이 되려면 생태계를 아우르는 통 큰 리더십을 보여 줘야 한다. 마침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등기이사에 오른다. 위기를 타개할 강도 높은 혁신이 예고됐다. 이 가운데 `편 가르기 혁파`라는 의제도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구태를 과감하게 청산하고 미래로 가는 합리적 리더십을 기대한다.
장지영 미래산업부 데스크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