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가가 온실가스 감축을 의무화하는 `파리협정 발효`가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다음 달 4일부터는 협정에 서명한 197개 국가가 전부 온실가스 감축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파리협정에 직접 서명했지만 아직 국회 비준을 받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우리나라 온실가스 감축 의무 시계는 돌기 시작한다.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산업계도 대응이 시급하다. 이미 배출권거래제와 온실가스·에너지목표관리제 등 강력한 제도를 수행하고 있긴 하지만 수출 중심의 우리 산업이 환경 보호무역에 기초한 신국제교역 환경에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신재생에너지,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자동차 등 기후변화 대응 신산업 육성에도 전력을 기울여서 새로운 먹거리 산업 육성에 나서야 한다.
◇파리협정 발효…우리도 비준 서둘러야
파리 기후변화협정이 다음 달 4일 정식 발효된다. 미국과 중국의 공동 비준 이후로 인도, 유럽연합(EU), 캐나다 등 주요 국가들이 잇따라 비준하면서 파리협정이 발효되는 조건인 55개국 이상 및 전 세계 배출량의 55% 이상을 달성했다. 최근 인도네시아가 비준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다소 많은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와 일본, 러시아, 호주 등은 아직 비준을 못한 상태다.
파리협정이 발효되면 세계 각국은 지구촌 재앙에 맞서기 위해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2도 이하로 유지하고, 더 나아가 온도 상승 폭을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각국은 이미 유엔에 제출한 국가별 기여방안(INDC)에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스스로 정해 국제사회에 약속하고 이 목표를 실천해야 하며, 국제사회는 그 이행에 대해 공동으로 검증한다. 파리협정 발효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서막에 불과하다. 각국의 실천 노력과 국제사회의 노력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는 의미다.
파리협정은 기존 기후체제인 교토의정서에 비해 크게 진전됐다. 지구온난화 억제를 위한 장기 목표를 강화했다. 선진 38개국이 주로 떠맡아 온 온실가스 감축을 개발도상국을 비롯한 지구촌 모든 국가로 확대했다. 5년마다 온실가스 감축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동시에 상향된 목표를 새로 제출하고 개발도상국 지원을 확대한다는 점 등이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비준안 처리 중에 있다. 다음 달 7~18일 예정된 제22차 당사국 총회(COP22)를 앞두고 국내 비준 절차 마무리가 시급한 상황이다. 그렇지만 비준 통과는 물리력으로 힘들어 보인다. 외교부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파리협정 비준동의안을 제출했으며, 외통위 일정에는 이 안건이 26일(수요일) 전체회의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이날 안건에는 내년도 예산안도 담겨 있어 이를 두고 여야가 정쟁을 이어 갈 경우 비준안 통과가 힘들어진다. 외통위를 넘어도 국회 본회의가 남는다. 국회 본회의 일정은 11월 초까지 아직 잡히지도 않았다. 우리나라가 파리협정 발효 이전에 비준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사실상 국제사회에 떠밀려 협정을 지켜야 하는 신세가 된다. 국가 발언권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다.
기후변화 분야 한 전문가는 “산업계가 파리협정 발효는 국가 간 협약 또는 규제로 여겨 동떨어진 얘기라고 인식하고 무대응으로 일관하면 안 된다”면서 “협정이 발효되면 즉시 각 국가의 지원 또는 규제 정책에 바로 적용되기 때문에 이를 적극 활용, 기업 경쟁력을 유지하려는 자세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위기이자 기회”…산업계 적극 대응 필요
파리협정 발효는 우리나라에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 세계 10위권 온실가스 배출국인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37% 줄이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위한 세부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온실가스 감축 대책으로 직격탄을 맞는 산업계는 목표가 지나치게 높다며 우려한다. 에너지 다소비 업종인 철강, 석유화학 업계는 초긴장 상태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침체에 빠진 우리 경제에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을 만들 기회이기도 하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나 ESS 사업에는 호기다.
수출 중심인 우리 산업계가 가장 예의 주시해야 할 것은 파리협약을 계기로 환경 규제 강화는 물론 탄소세, 배출권거래제 등과 같은 탄소 가격 책정 제도 도입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국제무역기구(WTO)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환경상품협정이 올해 말 최종 타결되면 환경상품이 무관세화 되면서 관련 시장 성장을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국 기후변화 대응은 온실가스 다배출 제품 규제와 무역장벽으로 진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각국의 온실가스 규제로 비관세 장벽이 확대되며, 선진국들이 주도하는 기후변화 관련 국제 표준이 시장 선점을 위한 도구로 활용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서 저탄소·친환경 규제와 국제 표준을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 국제 시장에서 도태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제품과 공정의 탄소 배출 정보 국제표준화 작업이 완료되면 주요국이 이를 근거로 국경세 조정 시도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기업이 기후변화에 따른 국제무역 변화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관세, 벌금, 수출 시장 진출 장벽 등 추후에 발생 가능한 여러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 배출 저감 이슈는 사업장 단위에서 제품 차원으로 점차 확대·강화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원가 부담이 증대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무역 장벽 해소 관점이 아니라 남들보다 앞서 제품의 저탄소 혁신을 달성, 새로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제품 개발 단계부터 친환경·저탄소 전략을 도입해 앞으로 강화될 환경 규제에 선대응하고, 핵심 기술 개발을 통한 제품의 고부가가치화와 국제표준화로 수출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은 연구개발(R&D)에서부터 시장 진출까지 경영 전 단계에 걸쳐 제공되는 각종 지원 정책을 적극 활용해 생산 프로세스 최적화, 공급망과 사업장·제품의 친환경화 등 전사 차원에서 환경 경영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이와 더불어 저탄소·고효율 제품과 서비스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ESS 등 신규 사업 기회가 창출되고 있어 이를 성장의 기회로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장현숙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파리협정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경영 전 단계에 걸쳐 제공되는 각종 지원 정책을 적극 활용, 전사 차원에서 환경 경영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함봉균 에너지/환경 전문기자 hbkone@etnews.com